신예 박재호 감독의 "내일로 흐르는 강"은 주제 의식이 돋보이는
영화다.

한국 현대사의 단면을 가족이라는 기초공동체를 통해 조명하면서
90년대의 새로운 가치체계를 탐색한 작품.

50년대 전쟁직후의 불안과 한일협정 반대데모, 유신철폐운동, 민주화
투쟁 등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해체되어간 한 가족의 이면을 다뤘다.

제작비는 3억5,000만원.

큰돈을 들이지 않고도 괜찮은 영화를 만들수 있다는 "독립영화정신"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예다.

현란한 옷으로 치장한 상업영화들에 비해 다소 남루하지만 진지한
눈으로 삶을 돌아보게 한다.

1부 "아버지"는 봉건적 대가족의 수장이자 권력의 상징을 그린 것.

그는 아들을 얻기 위해 여자를 갈아치우고 "여자가 배워봐야 첩노릇
밖에 더하겠냐"며 딸들의 진학을 반대한다.

주인공 정민 (이대연)은 배다른 누이 명희 (김예령)의 불행을 안타까워
하며 가족과 아버지의 갈등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학생운동에 빠지고
영화광이 된다.

2부 "가족"에서는 감독의 의도가 정면으로 드러난다.

영화감독의 꿈을 키우며 광고대행사에서 일하는 정민은 동성연애자
승걸 (이인철)을 만난뒤 그에게 포근함을 느낀다.

승걸은 성실한 가장이지만 아내의 눈만 벗어나면 동성연애자가 된다.

둘은 여느 연인들처럼 티격태격하다가 마침내 "결혼"을 선언, 온가족을
까무라치게 만든다.

감독은 이 파격적인 대안을 통해 새로운 가족의 의미를 모색하려 한다.

그러나 이 부분을 코믹하게 처리함으로써 1부의 진지한 문제제기를
희석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지난해 밴쿠버 영화제 본선에 진출한데 이어 올해에도 여러 영화제에
출품될 예정.

( 20일 코아아트홀 개봉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