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호동락] 김학수 <서강대 언론문화연구소장>..'작은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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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대학교수는 방학을 두번이나 가지는 한가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들은 학기중에는 교육에, 방학중에는 밀린 연구로
한가할 틈이 전혀 없다고 여긴다.
하여간 모든 것이 다 사람 나름이지만, 바쁜 가운데서도 무언가 즐겁고
부람있는 일을 해보자고 만든 모임이 "작은대학"이다.
신촌골의 3개 대학(서강대, 연대, 이대)에 있는 다섯명의 교수들이 모여서
지성과 도덕을 갖춘 진짜 대학생들을 길러보자고 모임을 가지기 시작한
것이 91년 봄이다.
우리는 숫자만 늘어나는 대학생,직업학교로 전락하는 대학, 그리고 형식에
치우친 사제지간을 통탄하였다.
그래서 연대의 박영신 (사회학), 이대의 진덕규 (정치학), 서강대의 정인재
(동양철학), 윤여덕 (사회학) 그리고 필자 (언론학)가 5개월의 준비과정을
거쳐 91년10월21일 "작은대학"의 문을 처음 열었다.
우리는 대학의 참모습을 찾기 위한 "대학찾기", 비판적 지성과 참다운
젊은이를 기르기 위한 "대학높이기", 그리고 대학인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대학낮추기"를 이념으로 삼았다.
그 이념들을 구현하기 위해서, 약 1년동안 20권의 고전 독파에 쪽글제시,
저녁시간 각각의 고전에 대해 실시되는 교수님의 강의사간에는 적극적인
토론참여, 그리고 무엇보다 3번의 결석에 무조건 퇴학 등을 학생들에게
요구하였다.
뿐만아니라 입학식에는 정장을 입도록 했으며, 철저한 지도와 심사를 거친
졸업논문 발표회를 통과해야만 비로소 "작은대학"의 졸업생이 될 수 있도록
하였다.
한 마디로 절제된 디시플린 (discipline)과 그 속의 이념들을 체험하게
하였다.
이런 엄격한 과정에도 불구하고 자원학생들은 자꾸 늘어만 갔고, 현재는
고려대, 홍익대까지 특별 자원을 신청할 정도에 이르렀다.
한번에 20여명의 학생들을 선발하는 기수가 벌써 7기에 이르지만, 전체
졸업생수는 아직까지 10명을 넘지 못하고 있다.
한 마디로 입학과 졸업은 하늘과 땅의 차이라고나 할까.
지금은 이대의 김왕식 (정치학), 연대의 임정택 (독문학) 교수님을 비롯
하여 신촌골의 여러 교수님들이 봉사해주고 있어 더욱 활기를 띄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진정 "큰대학생"을 기르는 우리의 "작은대학"운동에 감동하여
부분적으로 재정지원을 해주는곳(미원재단)까지 생겨서 기쁠 따름이다.
우리는 오늘도 새벽모임을 통하여 ''큰젊은이''를 위한 ''작은대학''을 일구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월 24일자).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들은 학기중에는 교육에, 방학중에는 밀린 연구로
한가할 틈이 전혀 없다고 여긴다.
하여간 모든 것이 다 사람 나름이지만, 바쁜 가운데서도 무언가 즐겁고
부람있는 일을 해보자고 만든 모임이 "작은대학"이다.
신촌골의 3개 대학(서강대, 연대, 이대)에 있는 다섯명의 교수들이 모여서
지성과 도덕을 갖춘 진짜 대학생들을 길러보자고 모임을 가지기 시작한
것이 91년 봄이다.
우리는 숫자만 늘어나는 대학생,직업학교로 전락하는 대학, 그리고 형식에
치우친 사제지간을 통탄하였다.
그래서 연대의 박영신 (사회학), 이대의 진덕규 (정치학), 서강대의 정인재
(동양철학), 윤여덕 (사회학) 그리고 필자 (언론학)가 5개월의 준비과정을
거쳐 91년10월21일 "작은대학"의 문을 처음 열었다.
우리는 대학의 참모습을 찾기 위한 "대학찾기", 비판적 지성과 참다운
젊은이를 기르기 위한 "대학높이기", 그리고 대학인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대학낮추기"를 이념으로 삼았다.
그 이념들을 구현하기 위해서, 약 1년동안 20권의 고전 독파에 쪽글제시,
저녁시간 각각의 고전에 대해 실시되는 교수님의 강의사간에는 적극적인
토론참여, 그리고 무엇보다 3번의 결석에 무조건 퇴학 등을 학생들에게
요구하였다.
뿐만아니라 입학식에는 정장을 입도록 했으며, 철저한 지도와 심사를 거친
졸업논문 발표회를 통과해야만 비로소 "작은대학"의 졸업생이 될 수 있도록
하였다.
한 마디로 절제된 디시플린 (discipline)과 그 속의 이념들을 체험하게
하였다.
이런 엄격한 과정에도 불구하고 자원학생들은 자꾸 늘어만 갔고, 현재는
고려대, 홍익대까지 특별 자원을 신청할 정도에 이르렀다.
한번에 20여명의 학생들을 선발하는 기수가 벌써 7기에 이르지만, 전체
졸업생수는 아직까지 10명을 넘지 못하고 있다.
한 마디로 입학과 졸업은 하늘과 땅의 차이라고나 할까.
지금은 이대의 김왕식 (정치학), 연대의 임정택 (독문학) 교수님을 비롯
하여 신촌골의 여러 교수님들이 봉사해주고 있어 더욱 활기를 띄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진정 "큰대학생"을 기르는 우리의 "작은대학"운동에 감동하여
부분적으로 재정지원을 해주는곳(미원재단)까지 생겨서 기쁠 따름이다.
우리는 오늘도 새벽모임을 통하여 ''큰젊은이''를 위한 ''작은대학''을 일구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