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어난 가는 잎새 굳은듯 보드랍고. 본디 그마음은 깨끗함을 즐겨하여
정한 모래틈에 뿌리를 서려두고 미진도 가까이 않고 우로받아 사느니라"

가람 이병기선생은 그의 시어를 통해 난의 아름다움을 이렇게 표현했다.

속세에 물들지 말고 절개를 지키라는 가람선생의 가르침이기도하다.

필자가 난재배를 취미로 한 것은 60년대.

우리나라에서는 난재배가 생소하던 때이다.

사업을 위해 일본 대만을 다니면서 곳곳에 퍼진 난농원을 보고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가지게됐다.

막연히 그들의 좋은 기호려니 생각하고 몇 촉 사왔었다.

우리나라 산에도 한란 춘란 등 좋은 품종이 많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20여년 전부터는 난문화가 확산되었다.

뜻있는 사람들이 난 채집을 시작해 우수품종을 개발, 우리 난도 세계적인
수준이 되었다.

우리 서울난회는 난 문화가 자리잡아가던 11년여전 탄생했다.

현재 회원은 약60여명.

필자가 회장을 맡고있다.

김충수 대신고 교감, 박상길 서광건설산업 회장, 강세원 전 LG금속 회장
등이 고문으로 계시고 조성근 동남테크노바 사장, 나규철 풍영화공 사장 등
6명이 부회장을 맡고있다.

서울난회는 가을에 꽃을 피우는 한난을 중심으로 배양하고있다.

회원들이 한햇동안 정성스럽게 키운 난을 모아 매년 가을 전시회를 갖고
있다.

지난해는 을지로입구 상업은행건물에서 제10회 난 전시회를 가졌다.

1천여명이 전시회에 참석, 난을 감상할 기회를 가졌고 일부 애호가들은
난을 빼앗다시피 사가기도했다.

전시회에는 우리와 결연을 맺은 제주도의 향란회 회원들이 한란을
보내왔다.

서울난회는 한달에 한번씩 회원집을 돌아가며 모임을 갖는다.

그회원의 난배양 방법을 연구하고 난에 관한 새정보를 교환하는 유익한
자리이다.

특히 일본의 전국 한란협회와 교류를 갖고 양국의 난재배방법 등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우리난의 국제화에도 노력하고있는 셈이다.

서울난회의 또다른 자랑은 우리가 키우던 난을 자연의 품으로 되돌려주는
일이다.

매년 한번씩 회원들이 산을 찾아 탐난과 함께 이식작업을 하고있다.

난은 아무도 찾지 않는 산에서 홀로 필때 그 최고의 자태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알고있다.

우리는 흔히 친구의 승진이나 경사스러운 날에 난을 보내 축하의 뜻을
표표한다.

경사스러운 날에 난이 보내지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미덕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난이 지나치게 상품화되는 것이 아닌가해 마음 한구석으로는
섭섭한 심정이다.

지금도 우리집 정원에는 3백여분의 난이 그 향내를 피우며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다.

그들은 어느 덧 내인생의 동반자가 된 느낌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