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박영배특파원]

한국 가전사들의 컬러TV에 대한 미상무부의 우회수출 덤핑조사가 지난
19일 관보를 통해 공식 발표되자 한국의 현지 가전업체들은 다소 당황스런
모습이다.

미국 국경을 따라 멕시코지역에서 공장을 가동중인 LG 삼성 대우 등은
덤핑조사로 생산 및 판매가 지장을 받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올 경기가 시원치않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판에 "덤핑"
이라는 악재에까지 신경을 써야할 판이어서 불안해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3사가 모두 멕시코지역 생산능력을 늘리는 등 대폭적인 투자를
해놓은 상태여서 그 불안은 가중되고 있다.

현지업계는 미국이 덤핑시비를 걸었지만 큰 불이익은 없을 것으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면서도 내심으로는 속앓이가 여간 아니다.

당장 엄청난 변호사비용이 들고 조사에 대비한 자료준비에 많은 인력과
시간을 투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우선 심적인 타격이 크다.

일본 등의 경쟁사들이 한국기업에 대해 덤핑업체라는 오명을 씌울 소지가
있다.

덤핑문제를 풀기 위해 실무자에서부터 위로 최고경영자까지 로비를 해야
하는 일도 고역이 될 게다.

실제 가전사들은 연합전선을 형성, 우선 멕시코 정부에 압력을 넣고 있다.

미행정부에 대한 로비도 멕시코를 통해 수행하고 있다.

이헌조 LG전자 회장은 직접 멕시코 상무장관에게 이 문제를 어필했다.

현지 공장은 또 나름대로 주정부 관리들을 상대로 멕시코에 대한 현지투자
의 이점을 설명하는등 "각개 작전"에 나섰다.

마킬라도라 프로그램에 따라 멕시코에 투자한 한국기업들에 덤핑이라는
족쇄가 채워질때 해외투자 유치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으름장을
놓고 있기도 하다.

특히 가전사들은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의 원산지 규정을 충족하고
있는데도 미국이 반덤핑이라는 국내법을 적용, 덤핑조사에 들어간 것은
부당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미국이 쉽게 우회수출 덤핑조사를 포기하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제소자인 노조의 입김을 무시할 수 없는데다 오는 11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있는 미행정부가 행여 여론이 불리하게 돌아가지 않을까 눈치를 볼게
뻔하다는 것이다.

삼성 미국법인의 최문경이사는 "당초 클린턴대통령이 공약한대로 NAFTA
발효 이후 실업률이 떨어지기는 커녕 실업자가 증가하고, 무역적자가 늘어나
가능한 한 꼬투리를 잡으려고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금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현지부품 조달비율(local contents)이다.

그러나 13인치 컬러TV를 제외하고는 크게 문제될 것 같지 않다는게 이곳
관계자들의 의견이다.

이 제품의 경우는 아예 미국이나 멕시코에서 CPT(컬러브라운관)조달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머지 제품은 부가가치 45%가 멕시코에서 발생하면 멕시코산으로 인정
한다는 NAFTA 규정을 충족하고 있다는게 현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그렇다고 안심하는 기색은 아니다.

이 문제는 미국의 반덤핑법과 복잡하게 얽혀 고도의 전략이 필요한게 사실
이다.

한편 긍정적인 측면도 없지 않다.

가전사들은 그동안도 부품업체 동반진출 등으로 현지의 부품조달비율을
높여 왔는데 앞으로는 이 노력이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멕시칼리의 LG전자는 올해중 트랜스미터 코일류 파워코드 DY(편향코일)
FBT(고압증폭장치)공장 등을 유치할 계획이다.

또 현지 부품조달선도 적극 찾아나서기로 했다.

티후아나의 삼성전자는 비교적 느긋한 편이다.

컬러TV 원가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는 CPT를 자매회사인 삼성전관이 지난
10월부터, 역시 자매사인 삼성전기가 지난해 7월부터 튜너 DY FBT 등을
현지 공급해 오고 있다.

협력업체도 6개사나 진출해 있다.

산루이스의 대우전자 역시 연초에 종합부품단지 기공식을 갖는등 부품
현지화에 큰 힘을 쏟고 있다.

자매사인 오리온전기가 올 하반기중 CPT공장을 세울 예정이며 4개협력업체
의 입주가 확정된 상태다.

앞으로 한국업체들이 수없이 반복될 것으로 예상되는 덤핑이라는 망령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현지부품의 범위와 물량을 확대하는 길 외에 묘안이
없다는게 현지 주재원들의 한결같은 견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