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업계의 브랜드전쟁이 "제2라운드"로 접어들고있다.

지난해 휘발유시장을 놓고 "사투"라 할수있을 정도의 치열한 판매경쟁을
벌인데 이어 이번에는 경유에서 브랜드전쟁의 조짐이 일고있는 것.

경유는 시장규모가 휘발류의 2배에 달할 정도로 큰데다 마진도 점차
높아지는 추세여서 정유업체들은 일전을 불사한다는 방침아래 제품개발
및 세부전략 마련에 들어갔다.

경유의 브랜드 전쟁은 유공의 선공으로 시작됐다.

고급휘발류전에서 호남정유에 선수를 빼앗겼던 유공이 경유로 실지회복을
선언한 셈.

유공은 지난 15일 브랜드를 단 "파워 디젤"을 시판하면서 "이제
경유시장에도 품질경쟁시대가 열렸다"면서 엔진세척 연료산화방지
녹생성방지 등의 기능을 가진 첨가제를 넣은 고급경유를 기존 제품과
같은 가격에 판매하겠다고 공세를 폈다.

지난해말 기준으로 국내경유시장의 38%를 점하고 있는 유공이 이처럼
나오자 호남정유 쌍용정유등 다른 4사도 가만 있을 수 없는 형편이 됐다.

외견상으로는 아직까지 "병력 전진배치" 등 "임전태세"는 취하지 않고
있으나 내부적으로는 비상대기령을 발동해놓은 상태다.

지난해 고급휘발유전에서 결전을 벌였던 호남정유 쌍용정유 한화에너지
등은 늦어도 3월까지는 고급브랜드 경유를 시판한다는 계획아래 개발을
서두르고 있다.

이번에는 특히 지난해 고급휘발유전에서 한발 물러나 "구경"만 했던
현대정유까지도 참전을 검토중인 것으로 전해지고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경유 전쟁"을 예상했던 일로 받아들이고 있다.

시장규모가 크다는 점에서 그렇다.

사실 휘발유는 운전자가 대부분인 소비자와 정책당국, 언론 등이
민감하게 반응해서 그렇지 생각보다 "작은" 시장이란 설명이다.

실제로 정유업계의 매출비중 구성비를 봐도 휘발유가 10%에 그치는
반면 경유는 27%나 된다.

지난해말 기준 국내 휘발유시장은 물량기준으로 연 7천2백27만배럴.

경유 1억7천5백93만배럴에 비해 절반에도 못 미치는 규모다.

정유사 공급가를 기준으로 할 때 금액면에서도 경유가 4조3천억원으로
휘발유(2조원)의 두배이상이다.

다만 소비자판매가에서는 특소세 등 각종 세금이 많이 붙는 휘발유가
연 7조2천2백억원시장을 형성해 경유(6조9천8백억원)보다 커보일 뿐이다.

마진면에서도 경유는 빠른 속도로 휘발유를 추격하고 있다.

휘발유나 경유의 업계마진은 대체로 공장도가의 10%정도로 정해져있으나
휘발유가 약간 높은 편이다.

그러나 최근의 가격 변동추이를 보면 지난해 당 10~20원(공장도가)
정도 휘발유보다 싸게 판매되던 경유가 올들어서는 1원40전으로 격차를
줄였다.

동절기에 강세를 보이는 경유의 특성상 잘하면 오는 2,3월에는 휘발유를
따라잡을 수도 있다는 전망도 있다.

정유사로서는 경유가 휘발유보다 훨씬 매력있는 상품이란 얘기다.

지난해의 "휘발류전쟁"이 기업의 이미지 싸움이라면 올해의 "경유전쟁"은
실리를 챙기기위한 싸움이라는 지적이 나오고있는 것도 이때문이다.

유공은 아예 초반 기선을 잡기위해 대대적인 광고.판촉행사를 준비
중이다.

반면 호남정유와 쌍용정유는 아직까지는 "심리전"으로 대응하고 있다.

호남정유 관계자는 "엔진을 보호할 정도로 차를 아끼는 사람들은
대부분 휘발유차를 탄다"며 "국내 디젤차의 엔진은 어떤 경유를 쓰든
마찬가지"라고 고급경유의 필요성에 회의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쌍용정유측도 마찬가지 반응이다.

"난방용 경유의 경우 현재 보급된 기름보일러들이 대부분 등유
경유겸용이기때문에 수명을 오래 연장하려는 사람들은 모두 등유를 쓰고
있다"고 말한다.

호유와 쌍용측은 그러나 "유종 포트폴리오 구성을 위해서 고유브랜드로
경유를 내놓는다는 계획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해 임전태세를 갖추고
있음을 부인하지 않고 있다.

도화선을 준비한 유공은 이미 불을 붙인 상태다.

소비자들에게 득될게 많은 "명분"이 있는 만큼 빼든 칼을 다시 집어넣진
않겠다는 단호한 태도다.

유공의 조헌제상무(소매담당)는 "석유시장 개방에 따라 외국의 유명브랜드
유류가 들어오면 지금처럼 차별화되지 않은 범용유류로는 경쟁에서 살아남기
힘들다"며 "국내 업체들끼리의 고급브랜드화경쟁은 생존을 위한 조건"이라고
말했다.

정유업계 브랜드 전쟁의 "제2라운드"는 이미 시작된 셈이다.

<권영설기자>

(한국경제신문 1996년 1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