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대통령이 오는 31일 30대그룹 회장들과 청와대에서 갖기로한 만찬
회동은 그동안 비자금 파문으로 저상된 기업인들의 경영의욕을 회복시키는
전기가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각별한 관심을 끈다.

시기적으로 4월총선의 열기가 점차 고조되고 있는 시점이기때문에 이모임을
김대통령의 "재계달래기"로 보는 시각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김대통령이
올해 국정운영 방향으로 설정한 "안정속의 개혁"을 위해서도 정부와 재계의
원만한 관계설정은 어느때보다 절실하다는게 우리의 생각이다.

지난해말 시작된 "역사 바로세우기"과정에서 재계는 일부 대그룹 총수들이
법정에 서는등 곤욕을 치르고 있으며 이같은 홍역이 경영의욕 상실로 이어져
심각한 투자위축 등의 부작용으로 나타나고 있음은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그대로이다.

과거 정부와 재계의 관계에서 정경유착의 사례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온갖 규제와 고금리 고임금 인력난 사회간접자본부족 등의 척박한 경영환경
속에서도 이만큼 우리경제를 끌어올린 것은 기업인들의 야심찬 기업가정신
덕분이었다고 하지 않을수 없다.

우리경제의 거의 유일한 자산이라고 해야할 그 기업가 정신이, 그것도
경제가 하강국면에 접어든 판에 크게 손상돼 투자위축과 경영의욕 상실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은 선거철이 아니더라도 국민적 걱정거리가 아닐수 없다.

벌써부터 불안조짐을 보이고 있는 경기연착륙 문제와 우성건설 부도이후
더욱 절실해진 중소기업 지원문제도 결국 실물경제를 이끌고 있는 대기업들
의 도움없이는 해결이 불가능하다.

이같은 현실인식하에서 우리는 이번 청와대 회동이 땅에 떨어진 기업인들의
사기를 북돋우는 계기가 되길 기대하면서 몇가지 당부를 곁들이고자 한다.

첫째 이번 모임이 "정략적"이라는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밥이나
먹고 사진이나 찍는 그저 그렇고 그런 모임이 돼서는 안된다.

만찬이니 만큼 충분한 시간을 갖고 격의없이 의견을 나누는 자리가 돼야
한다.

민간자율 경제시대에 정부가 기업에 해줄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게
마련이지만 재계로서는 흔치 않은 기회인만큼 충분한 준비를 갖춰 체계적인
정책건의의 기회로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둘째 이번 모임을 계기로 정부는 해외투자를 포함한 기업활동과 관련된
각종 규제를 보다 과감하게 완화-철폐해야 한다.

특히 과거 선거철에 흔히 볼수 있었던,경제논리를 외면한 정치논리에 의한
비상식적 행위들이 기업을 성가시게 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겠다.

셋째 재계도 이젠 비자금파문의 불쾌한 기억을 하루빨리 털어버리고 무한
경쟁시대의 최전선에 다시 힘차게 나서야 할 것이다.

세대교체와 경영혁신으로 젊어진 우리 기업들이 그 젊은 패기로 다시 한번
최전선을 맡고 나설때 국민적 신뢰를 회복하기는 시간 문제라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청와대 회동은 "경제 바로 세우기"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