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주 < 서강대 경제대학원장 >

과일시장 가게에 즐비하게 진열된 각종 과일들이 우리의 구미를 돋군다.

과일의 매력은 생김새.빛깔등 시각적 호소로 시작하여 촉각.후각으로
이어지고 드디어 단맛 신맛 육질감동 미국으로 결정을 이룬다.

과일이 아무리 다양하다 해도 바나나와 딸기를 혼돈하기에는 생김새와
맛이 너무나 색다르다.

귤과 레몬은 흡사하지만 조금난 주의를 기울이면 대뜸 구별할수 있다.

따라서 레몬과 귤을 착각하고 구입하는 경우는 드물다.

우리는 입맛과 필요에 따라 귤과 레몬을 구분해 한 종류만을 사든지 또는
두가지 과일을 적당한 비율로 구입한다.

그런데 때로는 굳이 레몬을 구입하여 레몬맛을 즐기다가 입장이 바뀌면
귤맛나는 과일로 변모해 주길 바라는 사람들이 있는 모양이다.

더구나 구매자가 두 과일의 맛을 겸한 과일이기를 상인에게 요구하고,
상인도 이같은 요구에 응해 보장해 주었다면, 시장바닥의 무리한 욕심과
부성실성을 알만하다.

금융시장에는 각종 금융기관과 다양한 금융상품들이 있다.

은행권에도 일반은행과 특수은행등 여러 형태의 기관이 있지만,
비은행권에는 종금 신용금고 생보 리스 신용협동기구 증권 투신등 더욱
세분화된 금융기관들이 존재한다.

이같은 금융기관들이 취급하는 금융상품들은 참으로 다양하다.

금융기관마다 자기를 알리는 간판을 크게 내걸고 객장마다 상품특성을
알리는 각종 안내장을 배치하는 까닦이 바로 여기 있다.

그래도 금융기관과 금융상품에 대한 오해와 혼돈은 가능하다.

거래자는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주의 의무(caveat emptor)를 다하여야
하고, 금융기관은 혼돈을 유발하는 행위를 자제하여야 한다.

다양하게 제시되어 있는 금융상품을 바로 이해하려면, 기본적으로 금융
상품의 세가지 특성을 따져보아야 한다.

금융상품은 첫째로 이자 배당 보험등 등의 형태로 보수를 돌려주는
수익성의 차원이 있다.

둘째로 필요에 따라 즉시 그리고 손해없이 현금화할수 있느냐를 말하는
유동성(또는 환금성)이 있다.

셋째로는 금융자산의 원금및 보수가 손실된 가능성의 높낮이를 말하는
안전성(또는 리스크)의 차원이 있다.

이같이 3차원적 특성들이 적절하게 배합되면서 각종 금융상품이 생산되고,
취급하는 상품에 따라 상이한 금융기관들이 존립한다.

한국처럼 금융인식이 미성숙한 사회에서는 금융상품을 일반적으로 1차원적
상품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즉 금융상품을 수익성 중심으로 선택하는 것이 저축.투자자들의 지배적
자세다.

높은 수익률이 높은 리스크를 수반한다는 금융상품의 기본원리를 무시하고
투자한다.

기대이상의 수익율에는 만족하고 군소리 없지만, 수익율이 기대에 미달하는
경우 자신이 아닌 남의 탓으로 책임을 돌리고자 한다.

이같은 저축.투자자들의 민원이 중폭되면서 사회적 물의가 두려워 정부는
통제하에 있는 금융기관들에게 타협.원금보상 등을 종용해 왔다.

바보의 바보짓, 욕심쟁이의 억지때거리에 불이익을 주어야 국민의 경제
교육이 바로된다.

금융기관이 자금을 가진 사람에게 공공연히 거짓 홍보로 저축.투자하게
하여 손실을 입힌 경우 그 책임을 전적으로 당해 금융기관에 귀착된다.

그러나 자금주가 금융기관에 대해 일정수준 이상의 수익보장을 요구한
경우 그 책임은 자금주에게도 귀착된다.

물론 금융기관이 그같은 수익보장을 단호히 거부했다면 문제 발생은
없었을 것이나, 치열한 예수금 유치경쟁상황에서 유혹을 물리치기 어려운
것이 금융기관의 입장이었을 것이다.

수익보장각서를 받아내기에 성공하는 것은 기껏 기백.기천만원을 예금하는
일반서민이 아니다.

적어도 억대이상의 자금을 운용하는 기관들(지방소재 금융기관 기금 재단
등)은 수신경쟁에 혈안이 된 금융기관들을 상대로 우월적 위치에서 수익율을
쇼핑하며 시중금리수준을 이끌어 올리고, 경우에 따라 수익보장각서를 요구
하고 금융기관이 이에 굴복하는 상황이 오래동안 지속되어 왔다.

명목이 자율이 높았던 시대에는 소리없이 진행되던 이같은 관행이 사회적
물의로 돌출된 것은 작년하반기 이래의 금리하락과 증시침체 때문이었다.

금번 수익보장각서 파동과 관련하여 금융기관들에게 문제해결의 기본적
책임이있다.

오랜 관행을 몰랐다고 발뺌할수 없는 감독기관도 책임을 면키 어렵다.

거액 자금주들에게는 원초적 책임이 있다.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제9조는 저축관련 부당행위에 대한 죄를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즉 저축자가 금융기관 임직원에게 정해진 수익이상의 보수를 요구한 경우
5년이내 징역 또는 5천만원이하 벌금에 처하게 되어 있다.

이러한 법정신이 관철되어야만 국민의 경제교육수준이 진일보할수 있다.

귤은 귤이고 레몬은 레몬이다.

마찬가지로 은행정기예금과 신탁상품은 상이하다.

수익보장각서가 발행되었어도 신탁상품이 예금상품일수 없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