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서울지법 417호 법정에서 열린 노태우 전대통령 뇌물사건에 대한
3차공판은 지난1,2차 공판때와는 달리 법정 곳곳에 자리가 비어있는 등
다소 맥바진 분위기속에서 진행됐다.

<>.이날 오전 법원정문 주변에는 전날부터 이번 공판의 방청권을 얻기위해
몰려든 일반인 1백여명과 방송중계차량및 언론사 취재차량 수십대로 혼잡한
모습.

그러나 이날 재판이 진행된 법정은 보도진들을 비롯, 일부시민들이
방청권을 얻기위해 전날 밤을 꼬박세우는 등의 열의를 보였던 것과는 달리
곳곳에 빈자리가 눈에 띄는등 1,2차공판때 보다는 다소 한산한 모습.

또한 오전에는 피고인들이 신청한 증인들의 신문이 진행되서인지 증인과
관계없는 일부 변호인들과 피고인들은 눈을 감은채 조는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재판부는 오전10시 정각 입정해 "95 고합 1228, 1237, 1238호 특가법
위반 등 사건외에 1320호 뇌물공여사건과 1311호 특가법상 뇌물수수
방조사건을 병합해 심리하겠다"고 선언.

재판부 발표중 앞에 세사건은 노씨 비자금사건을 가리키는 것이고
1320호사건은 김종휘 전외교안보수석의 뇌물사건으로 김우중 대우회장의
뇌물공여 부분이며 1311호사건은 전두환씨 비자금사건중 이원조씨가
이동찬 코오롱회장 등의 뇌물공여를 알선한 사건을 가리키는 것.

<>.이어 재판부의 "피고인 노태우"란 호명에 따라 옅은 청회색 수의
차림으로 입정한 노씨는 벌써 세번째 공판에 익숙한 탓인지 재판부와
변호인, 검찰측을 한바퀴 둘러본뒤 목례도 하지 않은채 자리를 찾아가
기립.

노씨는 특유의 여유있는 표정으로 자리에 서있다가 "앉아도 좋다"는
재판부의 지시에 따라 착석했으며 이어 삼성 이건희 회장이 옆자리에 앉자
가벼운 목례를 주고받은뒤 귓속말로 수십초간 인사말을 교환하는 모습.

약5분동안 차례로 입정한 기업인및 이현우씨 등 측근 인사들도 차례로
자기자리를 찾아가 앉았으며 맨 마지막에 입정한 한보 정태수 회장은
재판부를 향해 깍듯하게 목례하기도.

<>.피고인들이 모두 착석하자 재판부는 "변론을 속행하다"며 "전회공판과
마찬가지로 전회에서 피고인들이 진술한 내용을 요약해 점검해줄테니
검찰및 변호인들은 주의사항을 잘기억해 달라"고 당부.

재판부는 약40분간 진행된 2차공판 변론요지 설명과정에서 이건희,
김우중, 최원석, 김준기, 금진호, 이현우 피고인 등 7-8명에 대해서는
각피고인별 요지 설명에 5분이상씩 할애.

재판부는 그러나 노피고인을 비롯, 이준용, 이건, 이경훈 피고인 등의
경우에는 "반대신문을 하지 않았다"거나 "공소사실을 모두 자백했다"고만
밝히는식으로 끝내기도.

<>.이날 오전 신문이 진행된 3명의 증인들은 자사회장인 피고인들이
노씨에게 건네준 돈은 특별히 대가성을 띠고 있지않은 관행에 따른
것이라는 것과 회장이 그같은 금품제공에 일일이 개입하지 않는다고
일관되게 강조.

특히 일부 증인들은 자사회장을 돕기위해 다소 과장되거나 터무니 없는
듯한 진술을 하기도 해 방청객들의 폭소를 자아내기도.

동부건설 홍관의 사장은 동부그룹이 공사규모 1천2백억원에 달하는 부산
군정비창공사를 수주하게된 경위와 관련, 한전으로부터 수주받은 인근
송전탑공사로 연고권을 갖게됐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가 송전탑공사의
규모를 물은데 대해 12억원이라고 답하자 방청석에서 폭소.

<>.노씨 비자금사건에서 첫번째 증인으로 나선 소병해 전삼성그룹
비서실장이 1백70억원의 거액을 이건희 회장의 승인없이 임의로 지출
했다고 진술해 검찰과 담당재판부의 눈총을 받기도.

소씨는 이날 이보환 변호사의 증인신문에서 "이종기 삼성생명 부회장이
5차례에 걸쳐 청와대에 돈을 가져다 주었을때 이돈을 마련해 주었고 이는
회장의 증인없이 임의적으로 비서실장 선에서 결재했다"고 진술.

이에대해 김진태 검사는 "비서실장이 회사돈 1백70억원을 임의적으로
빼낸다는 것이 도저히 이해할수 없다"면서 3차례에 걸쳐 "회장의 승낙없이
돈을 마련해준 것이 사실이냐"고 추궁.

<>.재판장인 서울지법 형사30부 김영일부장판사는 변호인과 검찰의
증인신문이 끝날때마다 증인들을 상대로 일일히 중요사항을 다시 확인하고
구체적인 부분까지 캐묻는 등 상당히 적극적인 태도로 재판을 진행.

김부장판사는 특히 노씨에게 건네준 돈에 대해 기업측에서 변칙회계처리를
한 것과 관련해 증인들에게 "그같이 회계처리를 하면 국세청의 감사에 전혀
적발되지 않느냐", "국세청에서 그같은 회계처리를 알고 있는 것 아니냐"는
등 날카로운 질문을 퍼부어 눈길.

<>.이날 하오 속개된 공판에서는 노씨의 비자금 통장과 장부 등을 보관했던
007가방의 비밀 번호가 "629"였던 것으로 밝혀져 방청석이 한동안 술렁.

김진태검사는 이현우 전경호실장에 대한 보충 신문에서 "검찰 조사에서
이피고인이 비자금 가방의 시건장치의 번호가 629라고 했지 않았느냐"고
묻자이전실장이 "6.29선언에 대한 기념도 되고 기억하기도 쉬운 것 같아
그번호로 선택했다"고 답변.

(한국경제신문 1996년 1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