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성격 = 이 사건은 노태우 피고인이 대통령 재임기간동안
대기업회장들로부터 정부발주 대형건설공사를 비롯한 각종 특혜성 사업
등과 관련해 금품을 받고, 그 과정에서 주변 인사들이 도와준 것으로
드러난 전형적인 뇌물사건입니다.

대통령이라는 직책은 정부의 각종 정책을 수립, 추진함과 아울러
행정각부나자치단체의 장등을 지휘.감독할 수 있어 대규모 국책사업의
추진, 금융 및 세제의 운용과정에서 기업활동에 직무상 또는 사실상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는 다툼의 여지가
없다고 할 것입니다.

이와같은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대통령과 그러한 영향력을
이용하고 싶어하는 기업주가 비공식적으로 은밀하게 만난 것이 바로
이 사건 범행의 장소가 된 개별면담자리였습니다.

그 자리는 형식적으로는 기업현황,정책건의등에 관한 의견을 직접
청취한다는 그럴듯한 명분이 표방되었지만 실제로는 특정사업의 수주나
신규사업관련 인.허가 등의 특혜를 바라거나 포괄적으로 기업운영전반
을 선처해 달라는 취지로 금퓸을 주고 받는 계기가 되어 왔던 것입니다.

더구나 노태우 피고인이 그와같이 수수한 금품을 시중은행의 가명계좌에
분산예치해 두거나 무기명 양도성예금증서(CD)를 대량으로 매입하는
등으로 관리해 왔을 뿐아니라 그 자금의 상당부분을 부동산 매입 등
개인용도로 사용하는 한편 2천억원에 가까운 거액을 퇴임후에까지 남겨
놓았습니다.

이같은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이는 단순한 뇌물사건이 아니라 역사상
유례없는 대통령의 부정축재사건이라고 단정하지 않을 수 없고 이 사건의
금품제공자나 그 밖의 관련자들 또한 각자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대통령의
부정축재를 조장한것으로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상론 = 피고인 이건희, 같은 김우중, 같은 최원석, 같은 장진호,
같은 이준용, 같은 김준기, 같은 이건, 같은 정태수에 대하여 보면,
그동안 피고인들이 국내외의 기업활동을 통해 어느정도 우리나라의
경제성장과 국가발전에 기여한 공로는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의 최종적 책임이 노태우 피고인에게만 있다고 볼 수
없습니다.

노태우 피고인의 부정축재가 가능하도록 한 일방 당사자로서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서민들로서는 평생을 가도 만져보지 못하는 수십억,
수백억원의 뇌물을 제공하여 정경유착의 원인을 만든 피고인들을 비롯한
뇌물공여 기업인들의 책임 또한 그에 못지 않다고 할 것입니다.

피고인들은 일종의 관행에 따른 성금제공이라거나 권력의 압력에
못이겨 살아남기 위하여 불가피하게 갖다주었다고 변명하고 있습니다만
이권을 얻고 특혜를따내기 위해 오히려 기업측에서 스스로 나서서
권력을 부패시킴으로써 정경유착의 원인을 제공하고 이를 더욱 고착화
시켰다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끊임없는 기술축적과 경영합리화로 무한경쟁시대 개방화시대에 대처
하려는 노력보다는 손쉬운 정경유착의 비정상적 수단에 안주하려는 타성은
이제 더이상 용납될 수 없습니다.

"기업하는 사람이 돈이 남아돌아 그렇게 많은 돈을 대통령에게 갖다
줄리가 있겠습니까, 대통령과 독대했다는 소문만 나도 관련 부처에서는
알아서 모시기 때문입니다"라는 어느 피고인의 고백이 바로 이 사건의
진실 그 자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대통령이라 하여 예외가 될 수 없듯이 소위 재벌이라하여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관행이 "뇌물을주는 관행"이었다면 이번기회에 이를 단호히
척결하여야 할 것입니다.

공정경쟁의원칙을 깨뜨리고 경제정의의 실현을 방해하는 그와같은
관행이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도록 그런 관행을 조장한 피고인들을
엄중하게 처벌하여햐 할 것입니다.

<>결론 = 존경하는 재판장님! 아무쪼록 피고인들에게 추상같은 법의
심판을 내림으로써 우리사회의 고질적부조리와 총체적 부실의 근원인
정경유착의 고리를 단절하고 이 땅에 법과 정의가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
주실 것을 기대합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