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대 < 동아전장 고문 >

우리정부가 수립된 것이 1948년, 거기에 48년을 더하면 1996년인 금년
병자년이 된다.

올들어 처음 열린 경제장관회의에서 김영삼대통령은 중소기업청을
설치하라고 지시했다.

우리나라에는 수십만개의 중소기업이 존재하고 있다.

앞으로 얼마나 생길지, 언제 얼마만큼의 회사가 문을 닫을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늦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옛 격언이 있다.

수십년전부터 존재해온 미국의 중소기업청(Small Business Administration:
SBA)의 업무와 일본 중소기업청의 교육훈련등에서 신설될 중기청에 적지않은
방향성을 도출할 수 있다.

첫째 중소기업청은 업무목적이 뚜렷해야 한다.

다음달부터 조직을 개편하고 공진청을 모태로 프레임워크를 짜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정부도 거대한 조직이며 때론 국민으로부터 따가운 시선을 받지만
정부예산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힘이 없어진다.

재경원이나 통산부가 주도권만 다투지 말고 선진국의 장점을 받아들여
우리실정에 맞는 멋있는 기구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둘째 중소기업청내에는 반드시 융자부 혹은 자금부를 둬야 한다.

미국의 SBA예를 들어보자.

필자는 미국에서 융자업무를 한 적이 있다.

아는 사람이 워싱턴근교의 조그만 가게를 인수, SBA 융자를 받기위해
제반서류를 갖춰 본부에 신청했는데 그주의 예산이 부족한 탓에 콜로라도주
SBA에서 융자를 받았다.

미국은 땅도 넓고 인구도 많으며 지방자치제도 정착된 나라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중소기업을 시작, 또는 운영하다가 자금이
필요하면 수시로 SBA융자를 신청하고 있다.

경험에 의하면 우리 교포들이 SBA에서 융자를 받는 확률은 10%이내였다.

성공할 확률이 높은 사업프로젝트를 찾는 것도 쉽지 않고 소규모로 남들이
많이 하는 업종을 택하다보니까 융자결재가 쉽게 떨어지지 않는 것이 현실
이다.

그러나 미국에서 고등학교 이상만 나오면 자기사업을 시작할 때 SBA융자를
신청한다는 건 상식이다.

SBA융자는 제반서류만 갖추면 늦어도 1개월이내에 가.

부를 통보받으며 시중은행보다 3~4%포인트 낮은 이자에 융자기간도 장기
이다.

셋째 리엔지니어링이나 품질향상에 대한 지원이다.

중기청은 이들 업무와 직접 연관이 없다고 본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이 만든 제품하나가 세계속의 제품이나 부품으로
평가되는 WTO시대,경쟁시대에 살고 있다.

지난 여름 일본에서 열린 경영관리세미나중 요꼬하마시 중기청의 위원을
만나 "일본은 언제 SBA가 설립됐으며 어떤 업무를 하느냐"고 물었다.

"미국보다 역사는 짧지만 요꼬하마 업체들을 SBA청내의 연수실로 초청,
새로운 기술이나 노하우, 국제경쟁력에 관한 신정보를 무료로 교육시키고
외국업체와의 계약업무등도 적극 지원한다"는 설명을 들었을때 우리보다
수십년 앞서감을 느꼈다.

네째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경쟁력 강화나 품질경영 향상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어느 기술이나 혁신방법도 완전할 수 없다.

시행착오를 거쳐 더좋고 더 싸며 더 빨리 만드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가지 남의 것만 보고 모방하면서 수량, 즉 갯수만 채우면서
생산해 왔다.

이제 국민소득 1만달러, 세계 12위 무역국에 자만해서는 안된다.

내유외강의 국민의식을 갖고 내 제품이 곧 대한민국의 얼굴이라 생각하고
혼신의 힘을 기울여 어제보다 더 낫고 보기좋으며 값싼 물건을 세계시장에
내놓아야 한다.

국내 선두 자동차업체가 100PPM을 달성했다고 자랑하는데 일본의 토요타나
닛산은 7PPM의 한자릿수를 유지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또 생산성 향상기법도 토요타는 간판시스템, 닛산은 APM이라는 다른 이름
으로 선의의 경쟁을 하고 있음도 알아야 한다.

중소기업은 대기업보다도 가족단위와 같은 공동운명체이다.

조직내 신뢰감을 바탕으로 내부 경쟁력을 키우고 여기에 정부의 저리융자가
이뤄진다면 말그대로 인원과 자금이 융합될 것이다.

그러면 중소기업인은 혼신의 힘으로 일 할 것이고 종업원은 신바람나게
제품을 만들 것이며 정성어린 제품은 세계어느곳에서도 환영받을 것이다.

이것이 국경없이 살아갈 무역경쟁시대에서 우리가 후손에게 물려줄 유산
이라고 믿는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월 3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