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대통령이 30대그룹회장들을 청와대로 초청, 만찬을 가진 것은 취임
후 3년만에 처음이다.

김대통령이 오찬형식으로 청와대에서 30대그룹회장들을 만난 것은 93년7월,
94년1월, 95년 8월등 세차례나 있었다.

그러나 기업인들과 만찬을 가진 것은 지난해 3월 유럽방문기간중 수행
기업인들과의 만찬 이외에 한번도 없었다.

그만큼 이번 만찬이 갖는 의미는 각별한데가 있다.

회동분위기를 바꿈으로써 재계지도자들과 허심탄회한 얘기를 나누고 싶다는
김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됐다.

더구나 이번 만찬은 지난 29일 30대그룹회장중 일부가 노태우전대통령
비자금사건의 구형공판에서 무거운 형량을 받고 법원의 선고를 기다리는
가운데 열렸다.

무거운 형량을 받은 기업인들의 입장에서는 정부에 대한 불만이 없을수
없다.

공개적으로 내놓고 얘기하기는 어려우나 과거의 잘못된 관행에서 비롯된
행위에 대해 뒤늦게 문제를 삼는다는게 억울한 면이 없지 않다.

이번 만찬은 이러한 재계의 불만을 해소하는데 1차적인 목적이 있다.

비자금사건과정에서 형성된 정부와 재계의 불편한 관계를 해소하고 새로운
화합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정부와 재계와의 화합분위기조성이 비자금사건과 관련된 기업인들의 선고
공판에 유리한 방향으로 작용하기를 재계가 기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대통령은 이날 이러한 재계의 불만과 불안을 의식한듯 그동안 "역사
바로 세우기" 과정에서 기업인들이 어려움을 겪은데 대해 몇차례나 위로를
하고, 그 불가피성을 설명했다.

"역사 바로 세우기"는 잘못된 과거를 바로잡아 미래를 바로 세우려는
노력이고 곧 "나라 바로 세우기"라는 점을 강조하고 재계의 이해와 협조를
당부했다.

청와대고위관계자는 이와관련 "이날 만찬은 비자금사건으로 인해 고생한
기업인들을 위로하고 다소 위축된 경제계를 격려하는데 가장 큰 의미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이번 만찬회동과 비자금사건관련 기업인들의 선고공판
과 연계시키지는 말아 달라"고 강조했다.

이관계자는 "선고공판은 사법부가 알아서 할일"이라면서 "정부가 재계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경제발전과 역사발전을 위해 함께 노력하자는게
김대통령의 뜻"이라고 말했다.

이날 만찬이 정부와 재계와의 화합분위기조성에 있었던 만큼 김대통령은
재계지도자인 대기업총수들의 의견을 듣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올들어 새로 대권을 물려받은 신임회장들에게는 소감이 어떠냐고 물어보고,
개별그룹별로 사업전망을 질문하는등 각별한 모습을 보였다.

재계에 대해 강도높은 주문을 하지는 않았다.

김대통령은 오히려 정부가 앞장서서 규제를 과감히 철폐하고 기업환경개선
에 힘쓰겠다는 의지를 재천명하고 기업인들은 경영활동에 전념, 투자와
경영에 적극 나서 달라고 부탁했다.

또 물가안정과 노사화합 경기양극화해소가 필요하다는 일반적인 점을 강조
하고 중소기업에 대한 대기업의 지원을 당부했다.

중소기업이 진정한 동반자라는 인식을 갖고 중소기업영역보호와 인력
스카웃자제, 과도한 임금인상억제등에 힘써 줄것을 강조했다.

김대통령이 이같이 대기업에 대해 일방적인 지시보다는 협조를 요청한 것은
대기업들의 투자의욕회복 없이는 하강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는 현재의 경기
상태를 연착륙시키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또 재계와의 갈등관계가 지속된다면 경제및 사회불안정요인으로 작용,
4월총선에서 여권의 지지기반인 보수안정희구세력이 이탈할 것을 우려하기
때문으로 지적된다.

이번 만찬회동을 계기로 비자금사건과정에서 비롯된 정부와 재계와의
불편한 관계가 얼마나 회복될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최완수기자>

(한국경제신문 1996년 2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