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통상협상에서 상대방이 밀어붙이기만 하면 물러나는 허약한 나라"
라는 인식을 불식시키려는 듯 연초부터 통산부가 적극적인 통상정책 구상을
내놓고 있어 관심을 끈다.

그중에는 미국의 국별 무역장벽보고서(NTE)와 같은 "국별 무역환경조사
보고서"를 만들어 대외 통상협상에 적극 활용하겠다는, 다분히 공격적이고
진취적인 정책계획도 포함돼 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대외무역법
개정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화-개방화 추세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수출입관리 중심으로 짜여져
있는 현행 무역제도를 기업의 대외활동 지원강화와 외국인투자의 적극 유치
쪽으로 개정하는 일이 시급하기 때문이다.

통산부는 무역업및 무역대리업의 완전자유화를 골자로 한 대외무역법
개정안을 상반기중 국회에 제출한다는 계획아래 지금 관계부처와 협의중
이다.

그런데 통산부의 이 개정안은 통산부장관이 해외진출 한국기업과 국내진출
외국기업의 영업활동및 실적 등을 조사할수 있는 법적 근거를 명문화하고
있어 특히 재경원과 마찰을 빚고 있다는 소식이다.

통산부가 설명하는 취지인즉 국내외 기업활동과 관련된 자료가 축적되면
무역협상이나 기업지원 정책수립에 활용될수 있으며 법적 근거가 있어냐
책임있고 떳떳한 조사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재경원의 반대입장 역시 귀담아 들을 만하다.

통산부의 기업에 대한 조사권을 명문화할 경우 이는 정부규제를 새로이
추가하는 것으로 비쳐져 투자유치와 해외활동에 다같이 걸림돌이 될 것
이라는 해석이다.

우리는 통산부의 기업조사권 신설발상이 일부에서 의심하는 것처럼 기업을
통제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됐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사실 통상관계 주무부서인 통산부의 기업조사활동은 이미 관례화되어 있고
이같은 조사는 그것이 기업비밀에 속하는 내용이 아닌한 하등 문제될 것이
없다.

일부 국가에서는 정보기관을 동원해 기업비밀까지 캐내고 있는 판이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서는 회원국에 기업의 일반적인 국제영업활동에
대해 조사보고해야 할 의무를 지우고 있기까지 하다.

그러나 세계화-개방화를 위해 모든 규제를 철폐-완화해야 하는 추세에서
국내외 기업활동(비록 그것이 기밀이 아니더라도)을 조사할수 있는 법적
근거를 명문화한다는 것은 법개정의 취지와 상치될 뿐더러 시의적절하다고는
볼수 없다.

원론적으로는 아무리 좋은 취지의 발상이라 해도 그것이 시의에 맞지않거나
큰 흐름에 거슬리는 것이라면 정책화과정에서 신중을 기해야 함은 상식이다.

우리기업의 해외진출을 더욱 활성화시키고 외국인투자를 적극 유치하기
위한 효율적인 정책을 짜내야 할 시점에서 자칫 국내외 기업으로부터 오해를
살수 있는 일은 아니 하느니만 못하다.

더구나 이 문제를 둘러싼 정부부처간 마찰로 대외무역법 개정안의 정작
중요한 사항들에 대한 협의까지 지장을 받는 일은 없어야 하겠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2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