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사대부''라는 호칭이 있었다.

사대부란 문무 양반을 평민에 상대하여 일컫던 계급상의 호칭이다.

물론 이 말은 신분상의 계급이 사라진 현대에 와서는 쓰이지 않지만 때에
따라 세태의 후안무치함을 비유할때, 신의와 의리, 정도지향의 명분이 빛을
잃고 있는 시대를 타이를때 종종 그들의 면면을 빌려오기도 한다.

사대부들은 나라를 유지하는데 있어 예.의.염.치를 꼭 필요한 네가지 덕목
으로 여겼다.

상하간에 예를 존중하고 언제나 옳은 일에만 몸담기를 숙고했으며, 결백
하고 정직하게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으로 처신에 힘썼던 사대부들의 이러한
뜻은 시대가 아무리 변한다해도 늘 환기해야 할 것들이다.

특히 요즘처럼 총선을 앞두고 눈앞의 편리에 따라 그동안의 의리를
저버리는 사람들과 당장의 공명을 위해 주변의 시선에는 아랑곳없이 진로를
바꾸는 인사들을 보면서 우리들은 가치기준의 혼란과 더불어 사대부의 사유
를 되새기게 된다.

이 나라를 이끌어가는 사회 지도급 인사의 위치에 있는 사람일수록 더욱
냉엄하게 자신을 타이르고, 본분을 망각하고 욕된 길을 택하느니 차라리
수신의 자리를 지킬줄 알아야 국민의 사랑을 받는 공인의 도리일 것이다.

아무리 뛰어난 학식과 명성을 갖고 있다 해도, 해를 가릴 만큼 높은 인기를
누리는 사람이라 해도 부끄러움을 아는 염치가 없다면 정조를 더럽힌 여인네
와 다를바 없고, 부귀와 명예를 위해 신의를 한 순간에 던져버렸다는 오명을
영원히 떨칠수 없을 것이다.

부모가 설사 잘못했다 해서 그 부모에 대해 등을 돌리는 자식을 우리가
손가락질 하는 것처럼, 잠깐의 공명을 위해 두고 두고 남겨야 할 삶의 덕목
을 맞바꾸는 사람들을 우리는 외면할 수밖에 없다.

아직 우리는 사대부들이 목숨보다 소중하게 여겼던 겸양과 염치를 솔선하여
보여주는 사람을, 신의를 버리느니 모든 것을 포기하겠다고 말할 수 있는
이를 위해 존경과 격려의 박수를 보내고 싶은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2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