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옥이 코 앞에까지 내밀어진 금천아의 입술을 보니 두툼하니 꽤
육감적으로 생겨 있었다.

그 입술을 잘근잘근 씹어보는 맛도 그리 나쁠것 같지는 않았다.

게다가 금천아가 말한대로 입술에 발라진 붉은 연지의 향기가 여간
좋은 것이 아니었다.

하녀 주제에 어디서 이런 고급 연지를 구했을까.

부인네들 방에서 몰래 훔쳐 발랐는지도 몰랐다.

어디 한번 이 계집의 입술 연지를 핥아볼까.

그러면서 슬쩍 혀도 이 계집의 입속에 넣어보고. 보옥이 막 금천아의
입술을 빨려고 고개를 숙이는데, 채운 수란 수봉 등 여러 하녀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아니, 금천아. 도련님 데리고 여기서 무슨 장난을 하는 거야?"

채운이 금천아에게 무안을 주자 금천아가 홱 돌아서 달아나 버렸다.

보옥이 머쓱해진 얼굴로 하녀들을 뒤로 하고 방문을 열고 들어가니,
구들위에 아버지 가정과 어머니 왕부인이 마주앉아 있고 구들 아래로는
영춘 탐춘 석춘 가환이 앉아 있었다.

왕부인이 손을 내밀어 보옥의 손을 잡아 자기 옆에 앉혔다.

가정이 다른 아이들에게 향해 있던 시선을 보옥에게로 보내며 근엄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보옥은 다른 아이들은 몰라도 자기는 대관원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이
아버지 입에서 나올까 싶어 잔뜩 긴장하였다.

"궁궐에 계신 후비께서도 네 걱정을 많이 하시는 모양이다.

밖으로 나다니며 놀기만 좋아하고 공부는 뒷전으로 미뤄두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말이야.

그래서 후비께서 자매들과 함께 너도 대관원에 들어가서 공부에
힘쓰기를 원하시는구나.

내가 너한데 한번 물어보자.대관원에 들어가서도 제멋대로 놀아날 텐가,
열심히 공부할 텐가?"

보옥은 지금 어떻게 대답하느냐에 따라 대관원 입원 여부가 결정된다는
생각에 큰 소리로 대답했다.

"네,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보옥의 대답하는 모습이 우스웠던지 다른 아이들이 피씩 웃음을 흘렸다.

"요즈음 환약은 잘 먹고 있느냐?"

왕부인이 보옥의 목덜미를 쓰다듬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습인이 잊지 않고 자기 전에 꼭 먹여주어 잘 먹고 있습니다"

그러자 가정이 습인이 누구냐고 물었고 보옥은 시녀라고 대답했다.

"습인이라? 꽃향기가 사람의 코를 찌른다는 뜻이 아니냐?

그런 색스러운 이름을 누가 지어주었느냐? 분명 네놈이 지어주었겠지?"

가정이 다짜고짜로 보옥을 나무라기 시작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2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