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이 채 밝기 전부터 상대를 제압하는 명주폭을 찢는듯한 기합소리,
전광석화같은 빠른 몸놀림, 가끔씩은 상대의 분위기를 위축시키는 나지막한
신음하는 듯한 소리들이 온 도장안을 가득 메운다.

치열한 경쟁사회속에서 지지않고 살아남기 위해서는-그러기 위해서는
이겨야 되는-능력도 실력도 부족한 나로서는 무언가 새로운 전기가 필요
했다.

매일 만나는 나보다 강한 상대를 이기기 위해서 부족한 실력을 극복할
수는 없을까?

그러한 화두를 가지고 살아가는 나에게 주어진 해답은 정신력과 일반적으로
기합이라고도 하는 기력의 보충이었다.

온몸에 꽉 찬 정신력으로 기술을 메울수 있는 운동이 검도이다.

검도속에 감추어져 있는 기민성, 정확한 상황판단, 상대와 자기와의 사이에
생기는 한치의 틈도 없는 격투 거리의 과학적인식이라는 놀라운 장점이,
특히나 순간순간의 상황판단과 기민함을 요구하는 나의 직업에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또한 예의로 시작해서 예의로 끝나는 존경과 겸손의 운동이라는 면이
또다른 매력이기도 하다.

우연히 영등포구 문래동에 있는 YMCA 영등포지회의 제검회를 알게되었다.

제검회는 1990년 검도의 붐이 막 일기 시작할 무렵 약 20명의 회원들로
시작하여 지금은 1백여명의 회원이 가입돼있다.

한번에 30명 정도의 회원만 들어서도 넓은 도장이 그 후끈한 열기로 달아
오르고 그 기합소리에 건물이 진동하여 그 생동감에 또 다른 살아가는
즐거움을 느끼게 한다.

지난해 신설지점의 책임을 맡아 정신없이 뛰다 보니 아직껏 새롭게 죽도를
잡을 마음의 여유를 찾지 못하는 것은 나의 게으름 때문이라 생각하고
언젠가는 다시 먼지앉은 호구를 착용하고 죽도에 힘을 가할 시간을 기다리며
자동차 트렁크속에는 항상 죽도를 넣고 다니는 것으로 위안 삼고 있다.

인격적으로나 기량이나 도의경지에 이른 오병철 관장님, 임기택 사범님,
제검회를 이끌어가고 게시는 윤광훈 회장님(일신유화), 이준노님, 노승훈님,
김병규님 외 수개월간 보지 못한 서울의 제검회 회원들에게 오늘의 아쉬움을
전하며 건승하심을 빌어본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2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