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김철수 교수(63)는 지난 30년간 헌법을 연구하고 가르쳐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헌법학 교수중 한사람이다.

학설중심의 공리공론에서 벗어나 판례중심의 헌법학 강의를 국내에
정착시킨 장본인이기도하다.

그는 "법이 국가나 특정집단을 위해서가 아니라 국민 전체를 위해
존재한다는 신념으로 헌법에 매달려왔다"고 학자로서의 생을 돌이켜본다.

김교수는 지난 80년봄 "지식인 1백40인 선언"에 참여하는등 시류에
흔들리지 않고 정도를 걸어온 실천하는 지성이라는 평을 받고있다.

집권을 위해 헌정을 파기했던 전직대통령들이 법정에 선 지금 상도동에
있는 "한국헌법연구소"로 김교수를 찾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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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이 2년여 남았는데 건강은 어떠신지요.

<> 김교수 = 옛날에는 밤새워 책을 쓸 만큼 건강했는데 요즘은 힘겹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강단에 서면 힘이 솟아요.

천직인듯 싶습니다.

개학하면 다른 교수들과 똑같이 3강좌할 겁니다.

-법학교수로서 후회한 적은 없습니까.

<> 김교수 = 있지요.

가장 괴로운 때는 학교에서 배울때 정의감이 많고 법치나 헌정수호를
주장하던 제자들이 사회에 나가서는 그 원칙을 지키지 않을때였습니다.

환멸을 느끼기까지 했지요.

각종 매채를 통해 좋은 이야기를 해도 먹혀 들지 않을 때 역시 무력감을
느꼈습니다.

그렇지만 학자가 된 것 그자체를 후회한 적은 없습니다.

-보람도 많았겠습니다.

<> 김교수 = 훌륭한 제자를 길러낸 것 이상의 큰 보람이 있겠습니까.

내가 키운 제자들 중에는 정의를 외치고 인권문제에 관심을 많이
기울이고 있는 변호사 학자들이 여럿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양성했다는 것에 대해 느끼는 보람이란 이루 형언할수
없습니다.

-헌법학을 하게된 특별한 동기라도 있는지요.

<> 김교수 = 처음에는 법철학을 하려고 했습니다.

독일에 갔더니 우리와 똑같은 분단국가인데도 그들은 잘 살더군요.

우리도 독일처럼 잘 살기위해서는 국가가 잘 돼야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헌법을 공부해야하는 것 아닌가 해서 시작했습니다.

한때는 정치학을 할까도 생각했지요.

그러나 정치학이 제도적이라기 보다는 개인의 성향, 행태적인 것이
많다는 것을 깨닫고 헌법학을 선택했습니다.

-김교수께서는 군사정권시설 줄곧 독재에 맞서 싸웠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김교수 =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자마자 5.16이 터졌습니다.

독재의 길로 접어들더군요.

강단에 서면서 줄곧 5.16에 대해 비판적으로 활동했지요.

중앙 일간신문의 논설위원때 강경한 논조로 유신반대 글을 많이
썼습니다.

제4공화국초 유신헌법을 "국민주권에 위배되는 신판 군주제"라고 평한
헌법학개론을 펴냈다가 책을 몰수당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정보부에 끌려가 1주일동안 잠도 못자고 책내용을 고치라는 압력을
받기도 했습니다.

-유신정권이 무너진 뒤에는 헌법개정 운동도 펴셨지요.

<> 김교수 = 당시 신민당이 개최한 헌법체제에대한 공청회에서 내각제를
주장했습니다.

김영삼 당시 총재에게 "지금 군부가 강력한 대통령제를 들고 나오려고
하는데 그러면 안된다.

죽쑤어 남 좋은 일 시킨다"고 말했었지요.

김총재는 "절대로 미군이 있는 동안은 쿠데타가 안 일어난다"고
하더군요.

12.12 군사반란이 일어난 뒤인데 김총재가 너무 안이하게 판단하고
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크리스찬 아카데미에서 "바람직한 헌법"이라는 책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당시 장을병 교수 등 여러분들과 헌법안을 만들었는데 대통령제와
내각제로 의견이 엇갈려 대통령에게도 권한을 주고 총리에게도 권한을
주는 쪽으로 이야기가 됐습니다.

-한국 법학계의 기류는 어떤가요.

<> 김교수 = 외풍에 흔들리지 않고 법정신을 지키려는 교수가 많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교수도 눈에 띕니다.

누구라고 말 할 수는 없지만 어떤 동료 교수는 유신헌법 만들때
참여한뒤 유정회 국회의원으로 나갔고, 그런가하면 군정하에서
계엄사령관의자문역할을 한 사람도 있습니다.

총리가 된 분도 있었는데 그는 법실정주의를 내세워 법이면 최고라고
말하곤 했었지요.

그러던 그가 권부로 들어가서는 권력자가 만든 법이 최고라는 입장에
서는 경우를 보기도 했습니다.

-학자도 필요에 따라서는 현실정치에 참여할수 있는것 아닙니까.

<> 김교수 = 소신을 펼 수있는 상태라면 참여 자체는 바람직할수
있습니다.

정치에 참여해서 국가를 개혁하는데 일조하면 국가-사회 발전에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여건이 문제입니다.

이제까지는 독재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대통령이 많았죠. 이런 대통령
밑에서는 소신을 펼치지 못하고 대통령을 추종하는, 그야말로 이용당하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학자가 일단 현실정치에 참여한다든가, 공무원이 된다면 이용당해서는
안됩니다.

권력자가 일시적으로 인기만회를 위해 이용하려 한다면 말려들지
말아야지요.

-이수성 국무총리도 오랜 기간 서울대에서 법학강의를 해오신 분인데요.

<> 김교수 = 현직에 계신분이라 뭐라고 말하기가 어렵군요.

법치를 중시하는 이총리 같은 분이 어느정도 바른 말을 하고, 어느정도
대통령의 통치활동에 영향을 미칠수 있느냐가 문제라고 봅니다.

역사적 사명감이랄까, 역사적 가능성을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 정부는 역사 바로세우기를 역사적 과제로 설정하고 있는 데요.

<> 김교수 = 법은 정의와 합목적성, 법적 안정성 등 세가지 이념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역사 바로세우기 측면에서 12.12, 5.18과 관련된 역사적 죄인들을
단죄하는 것은 정의적인 측면에서는 바람직합니다.

그러나 꼭 그 사람들을 잡아넣고 처벌을 해야만 역사가 바로서는
것이냐는 별개의 문제라고 봅니다.

역사 바로세우기의 명분은 아주 좋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법적안정성이
침해될수 있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15~20년이 지난 지금 그들에 대한 처벌 시효가 지났는데 다시 소급법을
만든다는 것은 일종의 헌법에 반하는 경우라고 봅니다.

법적 안정성이 위태로워진다는 얘기지요.

-그러나 국민 정서는 두 전직 대통령의 반국가적 행위에 대해서는
분명히 단죄를 해야 한다는 쪽으로 기울어 있는것 같은데요.

<> 김교수 = 국가반란, 반인류적 살인을 자행한 사람들에 대해 공소
시효를 없애고 그 사람들을 처벌할 수 있게 한 것은 그 자체로 보아 잘한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헌정을 파괴하고 살인을 한 사람들을 처벌할 수있게 함으로써 다시는
쿠데타가 일어나지 않게 해야겠죠.분명히 짚고 넘어가야할 것은 "과거청산"
을 하려면 과감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갑이라는 사람이 비자금을 많이 만들었는데 그 사람이 현직
대통령에게 줬다고 해서 처벌하지 않는다면 안됩니다.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게 적용돼야 합니다.

일부 몇 사람만 처벌하면 표적수사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

단죄의 주체가 누구인가도 곰곰이 생각해보아야 할 대목입니다.

지금 역사 바로세우기라는 명목으로 단죄의 칼날을 들고 있는 사람들이
과연 5-6공시절 무엇을 했는지,그들에게 역사단죄의 정당성이 있는지
다시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정치권에서 내각제 개헌론이 심심치 않게 제기되고 있는데.

<> 김교수 = 내각제의 좋은 점을 생각하기에 앞서 왜 대통령제가
안되느냐를 생각해 봅시다.

대통령제는 미국을 제외한 나라에서는 성공한 예가 없습니다.

외국에서 대통령제를 모방해서 다 독재가 됐습니다.

한국은 그러한 나라의 대표적인 존재로 꼽힙니다.

권력을 독점하다시피한 대통령이 경제-정치를 좌우합니다.

국회를 마음대로 움직이고 대법원장 검찰총장도 마음대로 임명하죠.

독재적인 대통령밑에서는 아무리 헌법이 잘 됐어도 국민의 기본권
보장이 어렵습니다.

심지어 미국에서도 대통령제가 잘못됐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헌법은 3권분립의 원칙에 따라 견제의 기능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을 견제해야할 사람들이 지금은 시키는대로만 합니다.

집권당이 과반수 이상을 차지하니까 국회는 대통령의 뜻대로 움직이는
고무도장이 됐습니다.

국회가 여소야대가 되면 대통령하고 국회가 사사건건 싸우죠. 이게
대통령제입니다.

-내각제의 장.단점을 생각해볼까요.

<> 김교수 = 국회의원이 리더십을 갖고 정치를 할 수 있는 것이

의원내각제입니다.

의원내각제가 되면 당수가 총리가 되고 대통령은 타협적인 인물을
각정당의 합의하에 내세우게 됩니다.

내각제하에서는 대기업이 국회의원 정당을 매수, 정치를 지배할 수 있지
않느냐는 주장도 있습니다.

지금같이 국회의원이 힘이 없을 때는 가능한 소리입니다.

그러나 의원들이 내각제에서 자신을 갖게 되면 여-야 모두가 힘을 갖게
됩니다.

돈으로 움직일수 없다는 얘기이지요.

자주 정권이 바뀐다는 약점을 드는 사람도 있는데 이것도 말이 안됩니다.

독일의 경우 콜수상은 15년이나 했습니다.

일본은 정권교체가 별로 없고 한 정당이 계속하니까 국민들이 싫어하고
그래서 총리를 자꾸 바꾸는 것입니다.

강력한 대통령이 있어야 통일이 된다는 사람들이 있는데 오히려 통일을
하려면 의원내각제를 해야 한다고 봅니다.

[ 대담 = 김형수 정치부장 ]

(한국경제신문 1996년 2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