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옥은 습인을 달래놓고 그 길로 대부인에게로 가서 아버지에게 다녀온
이야기를 전하였다.

대부인도 보옥에게 아버지 말씀대로 대관원에 들어가서 공부에 힘쓰도록
당부하였다.

마침 대부인의 방에 대옥이 놀러 와 있었으므로 보옥이 대옥에게 말을
건네었다.

"대옥 누이는 대관원으로 들어가면 어느 채에 있고 싶어?"

대옥은 이미 생각을 다 해놓았다는 듯이 얼른 대답했다.

"난 소상관에 들어가 살고 싶어요.

대나무들이 구부러진 난간을 덮고 있는 풍취가 여간 그윽하지가
않거든요.

그리고 바람이라도 불면 그 대나무 잎사귀 흔들리는 소리가 얼마나
삽상한지"

대옥은 벌써 소상관에 들어가 있기라도 한 양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보옥도 반색을 하며 대꾸하였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대옥 누이에게는 소상관이 어울릴 거라고
말이야. 난 이홍원으로 들어갈 거야.소상관과 이홍원은 둘 다 한적한
곳에 있으면서 가까이 마주 보고 있으니 서로 왕래하기도 좋고"

보옥과 대옥은 대관원에 들어가 기거하는 것에 대한 기대감으로
부풀어 연신 말을 주고 받으며 대부인의 방에서 물러났다.

가정은 택일을 잘 하는 도사에게 물어 아이들이 대관원으로 이사하는
날을 이월 스무 이튿날로 정하였다.

보채는 형무원, 대옥은 소상관, 영춘은 철금루, 탐춘은 추상재, 석춘은
요풍헌, 이환은 도향춘, 보옥은 이홍원으로 처소가 정해졌다.

각 처소마다 이미 아이들에게 딸려 있는 유모와 몸종들 이외에 할멈이
두 사람, 하녀가 네 사람씩 새로 더 붙게 되었고 잡일을 맡은 일꾼들도
추가되었다.

이월 스무 이튿날이 되어 모두 함께 대관원으로 이사를 하였는데 마치
집안 전체에 큰 잔치라도 벌어진 것 같았다.

계절은 봄으로 접어들어 갖가지 꽃들이 바람결에 재롱을 피우며
흔들리고 버드나무 가지들도 너울너울 춤을 추었다.

사람이 기거하지 않아 적막하던 대관원은 일시에 생동감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후비 성친용 별채로 지은 대관원이 이렇게 유용하게 쓰일 줄 누가
알았겠는가.

가정은 일찍 죽은 아들 가주의 아내인 이환이 하녀들을 데리고 대관원
으로 들어가면서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이 마음 아프기도 했지만, 아이들이
좀 더 나은 처소로 옮겨가니 흐뭇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보옥이 과연 대관원에서 마음을 잡고 공부에 힘쓸지 염려스럽기만
하였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2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