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증시는 중국 지도자들의 말 한마디에 등락하기 일쑤다.

중국군이 대만해협에서 미사일을 쏘아대며 군사훈련을 벌여도 마찬가지
현상이 벌어진다.

지난달 29일 대만 증권시장은 홍콩에서 날아온 소식 하나로 순식간에
곤두박질쳤다.

중국의 이붕총리가 다음날 대만 흡수통일에 관한 일정을 밝힐 것이라는
보도가 알려지면서 하루만에 주가가 3.5%나 급락했다.

이총리는 30일 "대만은 떼낼 수 없는 중국의 일부"이고 "대만 지도자는
중국 한 지역의 지도자일 따름"이라며 중국의 기존 입장을 재천명했다.

이에따라 주가는 2.4% 반등했다.

요즘들어 대만의 안보는 이렇게 불안한 것이 사실이다.

최근 미국의 유력일간지 뉴욕타임스지는 "중국이 대만을 공략할 준비를
갖춰놓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만은 중국의 위협에도 아랑곳없이 아시아의 금융.해운 중심지를
지향하고 "실리콘 아일랜드"(반도체산업 중심지)를 꿈꾸고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중국 미사일이 항상 대만을 겨누고 있는데도 미국 일본등
선진국업체들의 대만 투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의 경우 외국의 대만 투자는 허가 기준으로 19억5,000만달러.

전년대비 80% 증가했다.

특히 반도체분야에서 미국 일본업체들의 대규모 투자가 계속되고 있다.

지난달 23일에는 미국 컴퓨터업체 휴렛팩커드가 일본 반도체업체 롬을
비롯 싱가포르 테크놀러지 등과 손잡고 12억달러를 들여 대만에 다국적
반도체공장을 짓기로 했다.

대만측에서는 벤처캐피털 보신창업투자가 참여했다.

이들은 선폭 0.35미크론(1미크론은 1,000분의1mm)으로 반도체 회로를 설계
하는 첨단 미세가공기술을 활용, 주문형반도체(ASIC)를 생산할 예정이다.

선진국업체들이 대만 반도체산업에 적극 투자하기 시작한 것은 80년대말
부터이다.

미국 반도체업체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는 대만 컴퓨터업체 에이서와
합작, TI에이서라는 반도체회사를 세웠다.

또 일본의 미쓰비시전기는 력첩전뇌공사와 제휴, D램을 생산하고 있다.

이밖에 도시바는 화방전자와, 오키전기는 남아과기공사와 각각 손잡았다.

외국 전자업체들이 불안한 섬 대만에 대대적으로 투자하고 있는 것은
대만이 컴퓨터관련산업에서 강자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만은 D램부문에서 한국을 추격할 수 있는 다크호스로 꼽힌다.

게다가 대만정부는 대만에 투자하는 외국기업들에 세제혜택 등 각종
인센티브를 부여하고 있다.

반도체산업을 육성하려는 대만 정부의 의지는 대단하다.

지난달 22일 남서부 대남에서는 제2의 과학기술공단 기공식이 열렸다.

대만 정부는 "실리콘밸리"로 자부해온 신죽과학공단이 포화상태에 달하자
98년까지 신죽보다 2배나 큰 "제2의 실리콘밸리"를 건설키로 했다.

새 과학공단에는 이미 대만적체전로제조 화방전자 등 15개 반도체업체들이
입주신청을 마쳤다.

대만 정부와 산업계는 "실리콘 아일랜드"라는 "타이와니스 드림"에 빠져
있다.

이들은 세계의 모든 컴퓨터에 대만이 만든 전자부품, 대만산 반도체를
장착토록 하겠다는 욕심을 숨기지 않는다.

미국 반도체업체 인텔이 자사의 반도체를 장착한 컴퓨터에 "인텔인사이드"
를 표기토록 하듯이 언젠가는 "타이와니스 인사이드"가 실현될 것이라고
말한다.

간단히 생각하면 대만이 "실리콘 아일랜드"나 "타이와니스 인사이드"에
집착하는 것은 반도체 등 전자부품을 비교우위품목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면에는 외국자본을 "안보의 인질"로 잡아두려는 속셈도 깔려
있다.

중국이 공격해올 경우 국내의 외국자산이 방패막이가 된다는 것이다.

일본의 한 신문은 최근 대만의 이런 속셈을 "실리콘우산"으로 표현했다.

미국의 "핵우산"에 마냥 의존할 수 없게 됨에 따라 대만이 "실리콘우산"을
만들려고 한다고 이 신문은 분석했다.

따지고보면 미국이 지난해 이등휘 대만총통의 미국방문을 허용했던 것도
중국보다 대만을 좋아하기 때문이 아니라 중국을 길들이기 위해서였다.

중국이 인구 12억의 초대형시장을 자랑하며 미국을 유혹하고 있는 지금
대만은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 "실리콘우산"을 준비하고 있는 셈이다.

< 김광현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2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