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 일본재계는 엄청난 파문에 휩싸였다.

파문의 진원지는 소니그룹.

창업세대인 오가 노리오사장이 회장으로 승진하면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말석상무인 이데이 노부유키를 사장자리에 앉힌다고 발표한
것이다.

이 발표는 일본 재계에 경악을 불러 일으켰다.

직급이나 연공서열로 보면 이데이 상무위로 사장자리에 오를 임원이
10명이상이나 대기하고 있었는데다 창업세대가 아닌 임원에게 최초로 경영
대권이 넘어갔다.

비기술자출신의 소니사장이 탄생했다는 것도 충격을 주는 대목이었다.

신조어 만들기를 즐기는 일본언론들은 ''인사파괴''라는 말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하지만 충격이 가라앉으면서 "기업구조가 바뀌지 않은 가운데서 최고경영자
한사람만 바뀌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라는 비아냥 섞인 목소리가 높아졌다.

실무형 경영인 범주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이 우세했다.

오너경영인과 고용사장의 차이를 염두에 둔 예상이었다.

그러나 이런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이데이 사장이 취임 10개월째를 맞는 소니그룹은 요즘 시끌벅적하다.

신임사장이 50년동안 축적되어온 소니의 체질을 뒤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데이사장의 경영지침은 ''현상파괴''이다.

반세기 소니역사를 철저히 부정하는데서부터 앞으로 반세기 동안의 비전이
나올수 있다는게 이데이사장의 생각이다.

그는 소니의 미래가 디지털사업에 달려 있다고 본다.

아날로그로부터 디지털로 바뀌는 기술환경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소니의 미래가 없다고 사원들에게 강조한다.

취임하자마자 사내에 걸어놓은 경영혁신캠페인 문구가 ''디지털의 꿈을
좇아라''이다.

소니 직원들은 이 가벼운 문구에 과격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입을
모은다.

신임사장이 벌여놓은 일을 보면 그 과격성을 충분히 느낄수 있기 때문이다.

파격적인 발탁배경 때문인지 이데이사장은 취임1개월째부터 파격적 인사를
단행했다.

소니의 미국법인총책인 미첼 슐호프사장을 전격 해임했다.

21년동안 소니에 몸담아온 인물이지만 현지법인 운영실적인 만족스럽지
못하다는게 해임사유였다.

또 후지사와에 있는 한 계열공장을 폐쇄해 600여명의 공장직원들을
그 곳에서 30km 떨어진 다른 공장으로 하루아침에 전출시키기도 했다.

심지어 소니가 불과 2년전에 도입한 ''컴퍼니제''도 이데이사장의 개혁대상이
됐다.

컴퍼니는 사실상 독립적인 조직으로 움직이는 소니의 각 사업부문이다.

이 제도가 전체조직의 효율성을 떨어뜨린다고 판단한 이데이사장은
올 4월1일자로 각 컴퍼니의 독립성을 낮추는 대신 본사기능을 대폭 강화하는
방향으로 그룹구조를 개편하도록 지시했다.

이에따라 각 그룹의 최고책임자가 부사장급에서 이사급으 모두 바뀐다.

또 각 컴퍼니마다 이동인력이 수천명에 이른다.

이데이사장은 이 구조개편작업이 직원의식개혁의 기폭제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소니그룹의 경영대권은 이부카 마사루회장, 모리타 아키오회장, 이데이사장
직전의 오가회장 순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3대까지 모두 창업주역들이었다.

이데이사장은 스스로 샐러리맨임을 자인한다.

그는 "창업세대들은 불굴의 투지와 재능으로 ''하고 싶은 일''을 관철시켜
오늘의 소니를 만들었다.

나는 치밀한 계산으로 ''해야 할 일''을 수행하는게 임무"라고 말한다.

이데이사장은 그래서 바쁜 일정속에서도 최신 기술과 경영이론을 습득하는
데 게을리하지 않는다.

특이하게도 그는 신작 영화감상을 통해 이론무장에 큰 도움을 얻는다고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2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