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룸비니 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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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6세기 현재의 네팔 남부와 인도의 국경부군인 히말라야산 기슭의
카필라성을 중심으로 샤키야족의 작은 나라가 있었다.
당시의 왕인 슈도나나(정반)는 어진 정치를 베풀어 백성들이 태평한 세월을
보낼수 있었지만 왕위를 이을 왕자가 없는 것이 걱정이었다.
그러던중 어느날 마야왕비는 기이한 꿈을 꾸었다.
하얀 코끼리가 두율천에서 내려와 왕비의 오른쪽 옆구리를 뚫고 태내에
들어오는 꿈이었다.
이때부터 왕비에게는 태기가 있었다.
왕비는 산월이 가까와지자 그 나라의 풍습을 따라 해산을 하기위해 친정인
콜리성으로 길을 떠났다.
늦은 봄 화창한 날인 기원전 536년 음력8일 이었다.
왕비 일행은 카필라와 콜리의 경계에 이르렀다.
멀리에는 눈으로 뒤덮인 히말라야의 장엄한 봉우리들이 보였고 가까이에는
아름다운 룸비니동산에는 갖가지 꽃들이 피어 있었고 뭇새들이 지저귀면서
날아 다녔다.
룸비니동산의 아름다움에 도취된 일행은 그곳에서 잠시 쉬어 가기로 했다.
왕비는 꽃이 활짝 피어 향기를 내뿜고 있는 무우수아래다 자리를 잡았다.
왕비는 꽃가지를 만지려고 오른손을 뻗쳤다.
그순간 산기가 왔다.
일행은 그 나무만에 서둘러 휘장을 쳐 산실을 마련했다.
세상에 나온 왕자는 한손으로 하늘을, 또 한손으로 땅을 가리키고 일곱
걸음을 내디디면서 사방을 둘러보고 "천상천하유아독존(우주에서 나보다
존귀한 것은 없다)"이라고 외쳤다.
이것이 석가모니(석가족의 성자)불타가 룸비니동산에서 태어난데 얽힌
이야기다.
룸비니가 불타의 탄생지로 처음 확인된 것은 1896년 영국의 고고학자
알렉산더 커닝엄에 의해서였다.
"불타가 탄생한 것에 연유하여 룸비니마을은 세금을 면하고 또한 생산량의
8분의 1만을 납입케 한다"는 내용의 명문이 새겨진 아쇼카왕(기원전 3세기께
인도 최초의 통일왕국을 세워 불교를 진흥시킴)의 석주를 발굴해 냄으로써
이곳이 불타의 탄생지임을 입중해 주었다.
네팔정부는 그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지난 4일 고찬인 마야데비사의 지하
5m에 위치한 벽돌방을 불타의 탄생장소로 공식선포했다.
이 절을 발굴하던 네팔과 일본 고고학자들이 9개월전에 그 방에서 성지임을
입증하는 "아쇼카왕 석주"를 발견해낸뒤 인접국가 고고학계의 동의를 얻어내
그 방을 수우수가 있던 장소로 확정하게 된 것이란다.
불자들에게는 더 할수 없는 희소식이지만 고고학계로서는 큰 수확이 아닐
수 없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2월 7일자).
카필라성을 중심으로 샤키야족의 작은 나라가 있었다.
당시의 왕인 슈도나나(정반)는 어진 정치를 베풀어 백성들이 태평한 세월을
보낼수 있었지만 왕위를 이을 왕자가 없는 것이 걱정이었다.
그러던중 어느날 마야왕비는 기이한 꿈을 꾸었다.
하얀 코끼리가 두율천에서 내려와 왕비의 오른쪽 옆구리를 뚫고 태내에
들어오는 꿈이었다.
이때부터 왕비에게는 태기가 있었다.
왕비는 산월이 가까와지자 그 나라의 풍습을 따라 해산을 하기위해 친정인
콜리성으로 길을 떠났다.
늦은 봄 화창한 날인 기원전 536년 음력8일 이었다.
왕비 일행은 카필라와 콜리의 경계에 이르렀다.
멀리에는 눈으로 뒤덮인 히말라야의 장엄한 봉우리들이 보였고 가까이에는
아름다운 룸비니동산에는 갖가지 꽃들이 피어 있었고 뭇새들이 지저귀면서
날아 다녔다.
룸비니동산의 아름다움에 도취된 일행은 그곳에서 잠시 쉬어 가기로 했다.
왕비는 꽃이 활짝 피어 향기를 내뿜고 있는 무우수아래다 자리를 잡았다.
왕비는 꽃가지를 만지려고 오른손을 뻗쳤다.
그순간 산기가 왔다.
일행은 그 나무만에 서둘러 휘장을 쳐 산실을 마련했다.
세상에 나온 왕자는 한손으로 하늘을, 또 한손으로 땅을 가리키고 일곱
걸음을 내디디면서 사방을 둘러보고 "천상천하유아독존(우주에서 나보다
존귀한 것은 없다)"이라고 외쳤다.
이것이 석가모니(석가족의 성자)불타가 룸비니동산에서 태어난데 얽힌
이야기다.
룸비니가 불타의 탄생지로 처음 확인된 것은 1896년 영국의 고고학자
알렉산더 커닝엄에 의해서였다.
"불타가 탄생한 것에 연유하여 룸비니마을은 세금을 면하고 또한 생산량의
8분의 1만을 납입케 한다"는 내용의 명문이 새겨진 아쇼카왕(기원전 3세기께
인도 최초의 통일왕국을 세워 불교를 진흥시킴)의 석주를 발굴해 냄으로써
이곳이 불타의 탄생지임을 입중해 주었다.
네팔정부는 그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지난 4일 고찬인 마야데비사의 지하
5m에 위치한 벽돌방을 불타의 탄생장소로 공식선포했다.
이 절을 발굴하던 네팔과 일본 고고학자들이 9개월전에 그 방에서 성지임을
입증하는 "아쇼카왕 석주"를 발견해낸뒤 인접국가 고고학계의 동의를 얻어내
그 방을 수우수가 있던 장소로 확정하게 된 것이란다.
불자들에게는 더 할수 없는 희소식이지만 고고학계로서는 큰 수확이 아닐
수 없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2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