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에 발표된 서울시 시정운영 3개년계획은 일반시민은 물론 도시전문가
모두의 이목을 끌었다.
조순시장이 시장직 취임 이래 새로운 철학이 담긴 시정계획안의 준비를
뜸들여 왔던 터였기 때문이다.
이 계획안은 모두 145개 시책과 507개사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국제교류를
통한 세계화사업에서 부터 노인정시설에 이르기까지 잡다한 사업들이 망라
되어 있다.
계획의 서두에는 시정사상 최초로 수립한 중기종합계획이라는 과시성 주장
과 함께 민선시장 3년(96~98년)동안 이루어야 할 시민에대한 약속으로서
가용재원 범위내에서 마련한 최소한의 계획임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계획안의 내용을 보면 도시계획교과서에 통상적으로 명시된 도시
종합계획의 기본요소는 몇줄의 항목 나열에 그치고 있어서 의아스러움을
금할수 없다.
이 계획이 주장하는 특징은 대규모 개발계획위주의 전시적인 사업보다는
시민생활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생활편익.복지.문화시설의 확충과 운영.
관리기법에 역점을 두고 시정운영의 총체적인 효과를 나타내도록 한 점이다.
아울러 계획의 집행.평가과정에서 시민참여의 폭을 넓힘으로써 여건변화에
따라 적시에 개선될수 있도록 하였음을 주장하고 있다.
도시행정이 다른 행정과 다른 것은 운영.경영마인드가 도시계획마인드와
함께 작동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도시계획은 말할 것도 없이 활동과 구조물의 위치 밀도 경관을 기본요소로
하며, 그것은 영구성을 가진다.
때문에 사업의 선택은 오늘의 세대 뿐만 아니라 내일세대의 사정까지 반영
되도록 최대한의 지혜를 동원하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어떤 사업이 도시계획의 문외한에게는 전시적이고 개발위주의 사업으로
보일수 있으나 전문가에게는 그렇지 않을수도 있다.
임명직 시장때의 도시행정이 때로는 시민복지.문화측면에 앞서서 전시적
개발사업만을 앞세운 사례가 있었을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임명직 시장때와의 차별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도시계획행정
의 정통을 무시하고 생활편익.복지.문화시설과 운영.관리기법을 주축으로
대도시문제를 해결할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것은 대도시 행정책임자로서
인식이 모자라거나 아니면 무책임할 정도로 지나치게 대중의 인기만을 지향
한다고 볼수밖에 없다.
이번의 시정운영종합계획은 재원배분측면에서 과거에 비해 도시방재.환경.
복지.문화.세계화 사업부문의 비중을 높이고 도로.교통.도시.주택부문의
비중을 크게 축소했다.
특히 도시.주택등의 비중을 파격적으로 줄여 도시하부구조를 이루는 사회
간접시설의 확충과 도시.주거환경의 구조개선을 위한 사업의 차질이 불가피
해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투자정책의 전환이 교통.주택.도시등 도시기본부문에서
서울시가 달성해야 할 경쟁력 수준을 검증하는 도시계획과정의 논리제시
없이 취해진 것이기 때문에 불안감을 더한다.
시민이 인간답게 살수 있도록 복지.문화.편익시설을 갖춘 도시의 건설은
우리 모두의 꿈이고 그 자체를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도시는 생활공간인 것 못지않게 국가경제를 지탱하는 생산.유통
활동의 요람이다.
그러한 도시의 기능은 국가와 함께 영구히 지속된다.
서구의 도시가 수세기에 걸쳐 투자.건설되어온 것과는 달리 서울은 반세기
도 못되는 짧은 시기에 급속히 성장하고 있다.
재원이 부족한 가운데 급속히 성장하는 도시일수록 기능면에서 효율적이고
복지수준을 갖춘 도시계획의 중요성이 높아진다.
도시기반시설이 잘못 조성된 결과 도시의 기능과 효율성이 저하되고 생활
환경의 질이 떨어지는 문제가 난무하고 있다.
편익.복지와 같은 문제도 도시문제 전체와 연결지어 해결해야 하는 것이
도시계획이다.
그리고 3년이내에 이룰수 있는 도시계획 사업은 거의 없다.
따라서 3년이내에 이룰수 있는 시책사업을 선택하는데 있어서도 면밀한
도시계획의 밑그림을 바탕으로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러한 도시계획과정을 경시한 결과로 본계획안에 제시된 사업시책
들은 기본적인 것과 골격적인 것, 그리고 복지정책적인 것등의 계층관계와
우선순위가 없이, 그저 평면적으로 나열되고 있다.
그 결과 사업효과를 입체적으로 평가하는 전략도 가늠해 볼수 없는 상황
이다.
도시행정의 주대상이 공간적 이용행위임에도 개발과 재개발에 대한 위치.
밀도.경관등에 대한 도시계획적 방향감각이 결여된 종합계획을 지침으로
한다면 일선구청과 수많은 관련부서에 의해 집행되는 대도시 행정이 과연
합목적적으로 수행될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그렇지 않아도 조순시장의 경제정책적 도시행정사고로 인해 도시계획행정이
방향감각을 잃고 표류하는 사례가 많다는 지적이 취임초부터 나오고 있음을
우려한다.
결론적으로 시정운영 3개년 계획에 대해 논평하고자 하는 바는, 그속에
제시된 사업시책이 모두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사업시책과 추후 후임자가 채택함직한 사업시책까지를 복합적이고
폭넓게 도시계획 구역내에 공간적으로 펼침으로써 각부문별 사업성과를
시스템지표로 측정해 보이는 방법론을 무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교통부문에서 차량 1만대당 사망자수와 같은 지표가 아니라 교통
체계지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시정운영 종합계획의 균형잡힌 보완이 필요함을 지적하고 싶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2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