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지 특약 독점 전재 ]]]

저개발국가들의 중앙은행은 한때 돈을 찍어내는 국영인쇄소에 불과했다.

정부에 재정자금을 대주고 어디어디에 어느 수준의 금리로 자금을 지원
하라는 정치권의 요구에 군말없이 따르기만 했다.

하지만 상황은 바뀌었다.

남미나 구공산국가들이 경제개혁의 일환으로 중앙은행독립을 추진한
것이다.

이들 국가의 중앙은행총재들은 대부분 개혁성향의 인물들이다.

중앙은행은 반드시 독립되어야 한다는게 이들의 공통적인 신념이다.

남미국가들은 중앙은행독립의 필요성을 뼈아픈 경험을 통해서 터득했다.

멕시코나 베네수엘라는 일찍이 중앙은행독립을 법적으로 명문화했지만
통화정책상 정치권의 입김은 줄지 않았다.

멕시코 중앙은행은 지난 94년 1월에 공식적으로 독립했으나 같은해 12월
치명적인 금융위기를 맞았다.

베네수엘라 중앙은행도 부실은행에 자금을 지원하라는 정치권의 압력을
이기지 못해 수십억 볼리바씩 마구 찍어내다가 낭패를 당하기도 했다.

법적으로 명문화된만큼 중앙은행이 실질적으로 독립을 유지하지 못해
빚어진 결과였다.

당시 멕시코은행은 재선을 노리는 집권세력으로부터 심한 압력을 받았고
베네수엘라는 중앙은행총재 자리에 라파엘 칼드라대통령의 심복이 앉아
있었다.

구공산국가들에서도 실정은 마찬가지였다.

국제통화기금(IMF)의 권고에 따라 구공산국가들은 중앙은행에 상당한
자율권과 명확한 권한을 부여하는 법을 채택했다.

정치적 외압을 차단하는 장치도 마련했다.

그러나 이들 국가의 중앙은행은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했다.

국민들에게 물가안정이 왜 중요한지에 대해 처음부터 가르쳐야 했다.

정치인들의 압력도 만만치 않았다.

이들은 통화팽창의 후유증은 아랑곳하지 않고 부실기업을 살려야 한다며
무조건 여신을 제공하라고 닦달하기 일쑤였다.

이런 어려움속에서도 중앙은행의 독립을 꿋꿋하게 지켜온 국가들은 이제
그 열매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가상승률이 급격히 낮아지면서 안정성장의 기조를 다지고 있는 것이다.

IMF의 조사에 따르면 인플레수준을 연 50% 아래로 떨어뜨린 구공산권
국가들은 2년안에 모두 경제성장의 길로 들어섰다.

그러나 아직까지 중앙은행의 독립을 사실상 인정하지 않는 국가도 있다.

루마니아의 중앙은행은 명목상 독립성을 유지하고 있지만 핵심부처에는
정치인들과 끈을 맺고있는 인물들이 포진해 있다.

외압을 거절하기는 커녕 외부와의 결탁 사례가 대부분이다.

그러면서 루마니아 정치인들은 지난해 자국통화의 가치폭락이 중앙은행의
실책 탓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신흥성장국 중앙은행들은 통화와 외환정책을 어떻게 조화롭게 구사하느냐에
골몰하고 있다.

폴란드 이스라엘 체코 등은 고정환율정책으로 물가억제정책을 폈다.

그러나 멕시코금융위기이후 이런 고정환율정책에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외국자본의 유출입이 큰 폭으로 변하는 만큼 보다 탄력적인 환율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었다.

환율이 보다 유동적일수록 통화정책에 대한 중앙은행의 재량은 커지게
된다.

대신 중앙은행은 더 많은 정치적 외압에 시달릴수도 있다.

신흥성장국의 중앙은행들은 통화나 외환정책외에 자국의 금융기관이 건실한
체질을 갖도록 하는데도 신경을 써야 한다.

물가를 잡으려고 무리하게 고금리정책을 펴다보면 허약한 국내 은행들이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된다.

멕시코와 아르헨티나가 이 때문에 쓰라린 경험을 맛보았다.

부실은행을 언제 어떻게 구제해 주느냐 하는 문제뿐만 아니라 어느 선까지
감독하느냐 하는 것도 중앙은행의 딜레마중 하나다.

이론상으로는 중앙은행이 개별은행을 구제하기 위해 이자율을 낮춰 물가
상승이란 위험을 무릅쓰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실제 적용은 쉽지 않다.

신흥성장국의 신세대 중앙은행들은 물가안정정책을 추진하면서 여러가지
난관을 극복해 왔다.

물가안정정책이야말로 중앙은행이 지향하는 독립의 이론적 근거요 목표다.

중앙은행을 지원하는 후원자도 있다.

동유럽국가에선 IMF가 엄격한 협정을 맺어 중앙은행들의 보호자역할을
해준다.

선진국에선 중앙은행이 정치인들의 꼭두각시가 되지 못하도록 해외투자자들
이 간접적인 방패막이 역할을 한다.

정치인들의 꼭두각시 역할을 하는 중앙은행은 결국 자국의 자본이 해외로
유출되는 것을 깨닫게 된다.

월가의 펀드매니저들도 어떻게 보면 중앙은행독립의 지지자들이라고 볼 수
있다.

< 정리=김홍열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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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inance and Economics, Feb 3, 1996
@The Economist, London )

(한국경제신문 1996년 2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