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상무부가 6년연속 극소마진 판정을 받은 삼성전자의 컬러TV에 대해 조사
철회를 선언하지 않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미국은 사실상의 무혐의 판정을 해놓고도 왜 덤핑굴레를 벗기지 않나.

왜 있지도 않은 덤핑을 계속 조사하겠다고 고집하는 것인가.

한마디로 차세대제품을 비롯한 모든 한국산 TV 제품에 대해 원천적인 규제
장치를 온존시키겠다는 것으로 밖에 해석할 수 없다.

미 상무부의 ''조사 계속'' 조치는 극소마진 판정을 받은 삼성전자외에
제소자와의 타협으로 이번 판정에서 제외된 LG 대우 등 한국가전업체들에
모두 적용된다.

한국 가전업계의 발목을 잡아 놓는게 미업계에 유리할 것이라는 계산
에서다.

미국의 계산은 기존 TV에 한정돼 있는 것도 아니다.

기존 TV는 오히려 부수적인 견제대상일 뿐이다.

HD(고선명)TV같이 아직 출현하지 않은 차세대제품에 대해서까지 미리
족쇄를 채워 놓겠다는게 속셈임이 분명하다.

이는 미상무부가 별도의 추가제소가 없었는데도 반덤핑규제대상 품목을
야금야금 추가하고 있는데서 확인된다.

최근 TV복합제품인 TVTR에 이어 HDTV까지 규제범위에 포함시킨게 단적인
예다.

그러기에 3년이 아니라 6년연속 극소마진 판정을 받았음에도 "유령을
가둬놓는 식"의 규제를 존치하고 있다는 얘기다.

여기에는 미국 업계가 상무부를 상대로 펴고 있는 "압박 로비"가 크게
먹히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가전업계는 "황색공포증"을 앓고 있다는 얘기가 있다.

한때 세계시장을 주름잡았던 TV메이커들이 흔적도 없이 모두 사라지고
만데는 일본등 극동국가, 특히 저가경쟁력을 무기삼아 80년대초 미국시장을
휩쓸었던 한국업계에 대한 경계심이 크다는 것이다.

최근 LG전자가 미국TV업계의 "마지막 자존심"으로 불리던 제니스사를
인수한 것까지 겹쳐 한국기업에 대한 경계심은 높아만 가고 있다.

미국기업들은 2000년을 전후해 본격 상품화될 HDTV시장에서의 재기를
벼르고 있다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HDTV가 출현할 때까지는 한국기업들을 계속 덤핑조사
굴레로 묶어두어야 한다는 전략인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이같은 전략은 국제 통상관행상 정당성을 갖기 어렵다.

미국보다 시장보호에 더 적극적이라는 EU(유럽연합)조차도 일반TV와 TVTR
HDTV 등을 별도의 품목으로 분류하고 있다.

한국정부가 "공세적인 대응"을 염두에 두고 있는건 이런 배경에서다.

일단은 방미중인 한덕수통산부 통상무역실장의 내주초 미상무부 면담에서
어떤 진전이 나올지를 두고 볼 일이다.

삼성전자의 법률고문인 김석한변호사(미애킨 검프법률사무소 선임파트너)는
"WTO(세계무역기구)의 분쟁해결 절차를 밟을 경우 한국이 승소할 가능성이
충분하다"며 "이 기회에 미국의 독주에 제동을 걸어야 향후 한미간 통상
이슈에서 한국이 입지를 넓힐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이학영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2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