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년 탈북 귀순자들이 부쩍 느는 가운데 몇가지 내심의 우려가 일부 현실로
나타나는 징후가 보이니 걱정이다.

탈북자의 증가 이유는 수긍하면서도 그 속에 위장 귀순자가 섞이진 않을까,
이곳에 적응을 못해 낙오-이탈자가 생기지 않을까 등 우려의 소리가 없지
않았다.

이번 한꺼번에 두 사람의 이탈 케이스가 밝혀지자 걱정만 할게 아니라
대책을 서둘러야 한다는 강박감 마저 일고 있다.

이제 누계 500명을 넘으면서 몇달전 노상 강도범에 이어 탈출-외화 밀반출
기도가 적발된다면 옛 독일처럼 수천 수만으로 난민이 증가할 경우는 상상
하는 것만으로 겁이 난다.

며칠전 당국은 초등학교 교사의 수용활용 등 만반의 난민대책을 세워놨다고
했다.

그러나 그리 쉽게 볼 문제가 아니라 깊이있는 원인분석에서 접근이 모색
돼야 한다.

몇명이 오면 교사 몇동을 이용한다는 식의 양적 개념보다 귀순자들의
마음을 잡아주려는 정신적 접근이 더 소중하다고 여겨진다.

이번 사건을 보자.

94년 같은 해 들어와 막노동을 하던 22세 김형덕군의 탈출기도와 강성산
북한 총리의 사위 강명도씨(38세)의 외화송금 기도는 우선 고액의 미화
반출을 기도한 점에서 공통이다.

변심 동기에 미화의 작용이 매우 컸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두 사람에게 1만4,700달러, 3만2,000달러는 원화 1,200만원과 2,500만원에
상당한 것으로 정착금을 쓰지 않고 아꼈다 해도 그들로선 거액이다.

그만한 외화를 바꿔 놓는 일도 모진 결심과 준비없인 불가능하다.

이는 일시적인 충동으로 보기 힘들다는 뜻이다.

처음부터 위장귀순을 했다고 보기는 어려워도 적어도 남쪽생활 1년여에
"잘못 왔구나" 하는 심리변화가 일어났다는 점은 인정하고 출발해야 한다.

달러는 귀환후 당국에 대한 속죄의 징표로 최상이라 보았을 것이다.

얽힌 가닥은 그들이 목숨 걸고 시도한 선택을 왜 후회했는가에서 풀어
나가야 한다.

물론 결핍한 것은 소유하고 싶고, 소유하면 시들할수 있는게 인성이긴
한다.

그러나 그보다 절실한 조건으로 사고방식 행동양식의 오랜 습관을 일시에
바꾸기 힘든 새 환경적응 곤란이 최대 이유라고 본다.

누구나 외치는 자유도 그것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에겐 혼란으로 느껴진다.

회담차 남에 왔던 북한인들이 흔히 쓴 남에 대한 단평이다.

여기서 필요한 것이 적응기간의 제공이다.

북한인의 재사회화 과정을 정부가 됐건 비정부 기관이 됐건 반드시 마련해
줘야 한다.

예산타령이 안 나올수 없다.

그러나 통일로 가는 길이 비싸고 힘들다는 합의는 이미 이루어 오지
않았는가.

이젠 말로만이 아니라 한단계씩 행동으로 옮길 시기에 접어 들었다.

한국정치가 정말 할 일은 이를 실현하는데 국민을 설득하고 재원을 짜내는
일이다.

귀순자들이 혼란이라고 느낄 남쪽 사회의 자유아닌 방종, 질서아닌 약육
강식, 반시대적 연고주의, 한없는 부패를 삼제하는 일은 비록 통일이
아니더라도 착실하게 시정되어야 함은 말할 나위 없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2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