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호동락] 박재원 <광주패션협회장/도투말패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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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 "수산나" "노블" "라모드" "퀸" "롱비치" "윤정"..
지금은 거리에서 찾아보기 힘든 상호이지만 70년대만 해도 광주
멋쟁이들의 가슴을 설레이게 하던 유명한 양장점들이다.
모두 광주의 명동이라 할수 있는 충장로에 자리하고 있었다.
해방과 함께 양장의 물결이 이땅에 흘러들어온 이후 5.25를 거쳐
70년대에는 양장이 우리나라 여성들의 보편적인 옷차림으로 자리잡은
시대였다.
양장에 대한 수요가 급증했고 대자본이 의류 제조분야에는 아직 눈을
돌리기 이전이어서 개인이 양재 기술과 손재간만 있으면 이럭저럭 의상점을
경영할 수 있었다.
당시 기성복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품질이 낮아서 웬만하면 맞춰입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70년대는 영세한 자영업자의 황금시대였다.
충장로에서 함께 양장점을 하면서 마음이 맞았던 우리들, 나이순으로
맏언니인 로즈 강현숙 언니, 수산나 김정옥 언니, 노블 한남례 언니,
라모드 박순자 언니, 필자와 동갑인 퀸 유미경, 윤정 정경옥, "도투말
패션"의 전신 롱비치 박재원, 국제 임연자, 막내인 키티 지현자 이렇게
9사람이 자주만나 대화를 나누었다.
시간이 지나다보니 서로의 가정생활도 알게 되고 속마음을 터놓고 어려움을
의논하는 다정하고 끈끈한 정이 생겼다.
누가 나서서 챙기지 않아도 서로의 경조사에 빠지는 일이 없었다.
바빠서 자주 만나지는 못해도 어쩌다 한번씩 모이면 할 얘기가 너무많았다.
같은 길을 가는 사람만이 공감할수 있는 일에 관한 얘기, 최신 패션의
경향이라든지 새로운 소재에서부터 세상 돌아가는 얘기, 자녀교육, 사랑과
예술, 인생에 대한 얘기까지 만나면 만날수록 할 얘기가 많았다.
바쁜 가운데도 계절마다 설악산, 제주도로 나들이를 하며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풍부한 감성을 가꾸어나갔다.
우리의 이런 만남은 어느날부터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9형제
모임"이 되어 친형제처럼 지내며 기쁨을 나누고 어려움을 돕자고 약속하기에
이르렀다.
1970년초였다.
지금부터 25년전이니 의상실을 확장, 이전하는 일, 부모님 회갑, 상,
자녀의 입학 등 각자 애경사가 많던 시절이었다.
오래전이라 정확한 기억은 안나지만 경사에는 금10돈, 애사에는 쌀
두가마니 하는 조항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참 감회가 새롭다.
당시 패션계는 호황이었다.
호황인만큼 업체간에 경쟁도 치열했고 기술 인력이 부족했다.
동일 업종에 종사하면서 서로 협력은 고사하고 이웃끼리 종업원을 몰래
빼내가는 사례도 많았다.
당시는 맞춤옷이라 디자인을 고객마다 달리하고 가봉을 꼭하게 되니
일년에 단 하루도 쉴수없는 연중무휴의 시대였다.
이런때 종업원들이 동맹 스트라이크를 일으켜 봉급인상을 요구하면 업주는
속수무책이었다.
패션계 전체가 멍드는 이런 악순환이 연례행사처럼 계속되었다.
9형제 모임은 우리만큼은 남의 종업원을 부당하게 스카웃하지 말고 대우를
적절하게 하고 연중무휴의 무리한 경영을 지양하기로 했다.
종업원들에게도 휴일을 주고 정해진 상여금을 지급해서 안정된 작업환경을
만들어주었다.
이런 9형제의 영업방식과 성실한 태도가 광주 패션업계에 좋은 모습으로
비쳤던지 부러워하는 분들이 많았다.
9형제 모임이 활성화되면서 다른 업주들도 종업원 스카웃을 자중하게
되었고 종업원들도 철새처럼 옮겨다니는 일에 신중을 기했다.
한동안 몰아치던 스카웃과 스트라이크 바람이 잠잠해졌고 종업원에게
휴가를 주는 업체도 늘어났다.
우정에서 시작된 9형제 모임이 광주 패션업계에 긍정적인 역할을 한것이다.
세월과 함께 패션업계에도 그리고 "9형제 모임" 개개인에게도 변화가
생겼다.
90년대는 대기업이 패션산업을 주도하면서 소규모 자영업자는 퇴조하는
시대이다.
로즈언니 노블형님 라모드언니 퀸동무가 은퇴했다.
윤정에서 마리아로 이름을 바꿔 대담한 개성을 보여주던 정경옥은 연전에
위암으로 천주님곁으로 먼저 떠났다.
그러나 수산나 형님, 국제 아우님 기타동생이 꾸준하고 성실하게 의상실을
지키고 있다.
20대 젊은 시절, 꿈을 갖고 만나 함께 일하며 패션인으로서 보람과 성취를
이루었던 우리들, 이제 중년의 문턱에서 각기 다른 영역으로 발돋움하고
있지만 지금도 여전히 형제처럼 지낸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2월 10일자).
지금은 거리에서 찾아보기 힘든 상호이지만 70년대만 해도 광주
멋쟁이들의 가슴을 설레이게 하던 유명한 양장점들이다.
모두 광주의 명동이라 할수 있는 충장로에 자리하고 있었다.
해방과 함께 양장의 물결이 이땅에 흘러들어온 이후 5.25를 거쳐
70년대에는 양장이 우리나라 여성들의 보편적인 옷차림으로 자리잡은
시대였다.
양장에 대한 수요가 급증했고 대자본이 의류 제조분야에는 아직 눈을
돌리기 이전이어서 개인이 양재 기술과 손재간만 있으면 이럭저럭 의상점을
경영할 수 있었다.
당시 기성복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품질이 낮아서 웬만하면 맞춰입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70년대는 영세한 자영업자의 황금시대였다.
충장로에서 함께 양장점을 하면서 마음이 맞았던 우리들, 나이순으로
맏언니인 로즈 강현숙 언니, 수산나 김정옥 언니, 노블 한남례 언니,
라모드 박순자 언니, 필자와 동갑인 퀸 유미경, 윤정 정경옥, "도투말
패션"의 전신 롱비치 박재원, 국제 임연자, 막내인 키티 지현자 이렇게
9사람이 자주만나 대화를 나누었다.
시간이 지나다보니 서로의 가정생활도 알게 되고 속마음을 터놓고 어려움을
의논하는 다정하고 끈끈한 정이 생겼다.
누가 나서서 챙기지 않아도 서로의 경조사에 빠지는 일이 없었다.
바빠서 자주 만나지는 못해도 어쩌다 한번씩 모이면 할 얘기가 너무많았다.
같은 길을 가는 사람만이 공감할수 있는 일에 관한 얘기, 최신 패션의
경향이라든지 새로운 소재에서부터 세상 돌아가는 얘기, 자녀교육, 사랑과
예술, 인생에 대한 얘기까지 만나면 만날수록 할 얘기가 많았다.
바쁜 가운데도 계절마다 설악산, 제주도로 나들이를 하며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풍부한 감성을 가꾸어나갔다.
우리의 이런 만남은 어느날부터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9형제
모임"이 되어 친형제처럼 지내며 기쁨을 나누고 어려움을 돕자고 약속하기에
이르렀다.
1970년초였다.
지금부터 25년전이니 의상실을 확장, 이전하는 일, 부모님 회갑, 상,
자녀의 입학 등 각자 애경사가 많던 시절이었다.
오래전이라 정확한 기억은 안나지만 경사에는 금10돈, 애사에는 쌀
두가마니 하는 조항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참 감회가 새롭다.
당시 패션계는 호황이었다.
호황인만큼 업체간에 경쟁도 치열했고 기술 인력이 부족했다.
동일 업종에 종사하면서 서로 협력은 고사하고 이웃끼리 종업원을 몰래
빼내가는 사례도 많았다.
당시는 맞춤옷이라 디자인을 고객마다 달리하고 가봉을 꼭하게 되니
일년에 단 하루도 쉴수없는 연중무휴의 시대였다.
이런때 종업원들이 동맹 스트라이크를 일으켜 봉급인상을 요구하면 업주는
속수무책이었다.
패션계 전체가 멍드는 이런 악순환이 연례행사처럼 계속되었다.
9형제 모임은 우리만큼은 남의 종업원을 부당하게 스카웃하지 말고 대우를
적절하게 하고 연중무휴의 무리한 경영을 지양하기로 했다.
종업원들에게도 휴일을 주고 정해진 상여금을 지급해서 안정된 작업환경을
만들어주었다.
이런 9형제의 영업방식과 성실한 태도가 광주 패션업계에 좋은 모습으로
비쳤던지 부러워하는 분들이 많았다.
9형제 모임이 활성화되면서 다른 업주들도 종업원 스카웃을 자중하게
되었고 종업원들도 철새처럼 옮겨다니는 일에 신중을 기했다.
한동안 몰아치던 스카웃과 스트라이크 바람이 잠잠해졌고 종업원에게
휴가를 주는 업체도 늘어났다.
우정에서 시작된 9형제 모임이 광주 패션업계에 긍정적인 역할을 한것이다.
세월과 함께 패션업계에도 그리고 "9형제 모임" 개개인에게도 변화가
생겼다.
90년대는 대기업이 패션산업을 주도하면서 소규모 자영업자는 퇴조하는
시대이다.
로즈언니 노블형님 라모드언니 퀸동무가 은퇴했다.
윤정에서 마리아로 이름을 바꿔 대담한 개성을 보여주던 정경옥은 연전에
위암으로 천주님곁으로 먼저 떠났다.
그러나 수산나 형님, 국제 아우님 기타동생이 꾸준하고 성실하게 의상실을
지키고 있다.
20대 젊은 시절, 꿈을 갖고 만나 함께 일하며 패션인으로서 보람과 성취를
이루었던 우리들, 이제 중년의 문턱에서 각기 다른 영역으로 발돋움하고
있지만 지금도 여전히 형제처럼 지낸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2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