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경매에 넘어가 미안하다. 못난 나는 이제 책임을 지고 죽어야겠다".

지난해 10월 엘리베이터 부품업체인 유창전기금속의 최원식사장은 이런
말을 남기고 자살했다.

거래업체가 문을 닫으면서 최사장은 극심한 판매부진과 자금난에 시달렸다.

회사를 살리기위해 여섯 형제의 집을 담보로 잡히면서까지 자금동원에
나섰지만 결과는 별무소득이었다.

최사장의 죽음을 두고 업계에서는 "절대 남의 일이 아니다"는 반응을
보였다.

현재와 같은 자금난이 지속되는한 최사장같은 중소기업인이 속출할 것이며
결국엔 은행등 금융기관들이 중소기업인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러나 은행등 금융기관의 반응은 달랐다.

사업전망도 밝지않고 더 이상 담보도 제공할수 없는 최사장에게 "단지
중소기업이라는 이유만으로" 자금을 지원하는건 무리라는 반응이었다.

최씨의 죽음을 둘러싼 상반된 반응이 현재 중소기업과 금융기관사이에
일고 있는 "대출관행"에 대한 시각차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중소기업인들은 "정부가 아무리 중소기업지원을 확대해도 은행들이 종전과
같이 담보위주의 대출관행을 고집하는한 중소기업에게 돌아오는 실질적인
혜택은 별로 없을 것이다.

사업성을 봐서 과감한 신용대출을 확대하는 것만이 만성적인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는 중소기업을 도울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K산업 P사장)라고
주장한다.

반면 금융기관에선 "금융개방을 앞두고 금융경쟁력강화도 시급하다. 이런
상황에서 부실여신발생위험을 무릅쓰고 무작정 중소기업에게 돈을 퍼주는
것은 위험할수 밖에 없다"(S은행 L상무)고 반박한다.

이런 시각차이는 지금까지의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관행에서 비롯된다.

아무리 신용상태가 좋은 중소기업이라 할지라도 담보가 없으면 은행대출을
받기는 하늘의 별따기였다.

담보를 제공해도 대출금의 1백30%를 설정하고 있는 상황이다보니 대출금
확대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중소기업들은 금리불문하고 대출총액확대에 심혈을 기울일수 밖에
없었다.

올들어 은행들이 당좌대출 1회전기간을 폐지하는등 중소기업지원정책을
잇따라 내놔도 중소기업들이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담보가 충분한 기업들에게만 혜택이 돌아가는 조치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은행등 금융기관들이 담보관행만 고집하고 있는건 물론 아니다.

신용보증기금과 협약을 맺고 우선적으로 대출해주는 은행(조흥.한미은행)이
생기고 있다.

특허권등 무형의 재산을 담보롤 잡아주는 은행(국민은행)도 나타났다.

다음달부터는 은행들이 공동개발한 "중소기업신용평가표"에 따라 신용대출
을 크게 늘리기로 계획을 세워놓고 있기도 하다.

사업성 경영자능력등 비재무항목의 비중을 늘려 담보력이 취약한 중소기업
에게 신용대출의 기회를 많이 부여한다는게 골자다.

또 "대기업이 은행을 떠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은행들로서도 우량
중소기업을 대거 발굴할 수 밖에 없어 앞으로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관행도
변할 것"(위성복 조흥은행상무)이라고 전망하기도 한다.

이에따라 중소기업대출금중에서 신용대출(보증대출포함)이 차지하는 비중도
지난해 47.2%에서 더욱 높아질 것이라는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그러나 신용대출확대를 개별은행에 맡겨놓기보다는 제도적인 부분을
우선적으로 보완해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현재 총자산 60억원이상으로 돼있는 외부감사대상기업을 20억원이상으로
확대, 금융기관들로 하여금 신용대출을 취급할수 있는 여지를 늘려주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은행들은 외부감사대상에서 제외되는 기업에게는 무조건 담보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신용금고 리스 생명보험사등에도 중소기업에 대한 보증업무를 취급할수
있도록 허용, 중소기업의 담보능력을 제고시킬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대출취급자들의 자세변화다.

중소기업에 대한 컨설팅전담회사인 향영21C리스크컨설팅의 이정조사장은
"부동산가격의 하락과 임금채권우선변제등으로 부동산이 담보로서의 가치가
떨어지고 있다. 그런데도 금융기관들은 부동산담보만을 고집하고 있다.
이런 사고가 수정되지 않는한 신용대출확대는 요원할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 하영춘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2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