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비관론의 핵심은 공급과잉에 대한 우려다.

메모리 반도체 제조업체들의 투자경쟁으로 앞으로 공급물량이 넘쳐날
것이란 지적이다.

여기에다 대만이 메모리반도체 시장에 신규 참여함으로써 세계시장에서
공급과잉은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 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미메릴린치사가 지난해말 내놓은 보고서는 이같은 시각을 편 대표적인
경우다.

메릴린치는 "반도체 제조설비의 신규증설이 끝나는 동시에 대만의 시장
참여가 본격화되는 오는 97년께부터 공급과잉이 일어나 세계 반도체 시장에
혼란이 올 것"이라며 "97년 위기론"을 제기했다.

사실 세계 반도체 업계가 최근 설비투자에 쏟아붓고 있는 돈은 겁이 날
정도로 많다.

예컨대 도시바 NEC 히타치 미쓰비시 후지쓰 등 일본 5대 메이커가 지난해
설비투자에 털어넣은 금액만도 5조2천4백억원이다.

이는 전년보다 24% 늘어난 액수다.

한국업체들은 한 술 더 뜬다.

삼성전자 현대전자 LG반도체 등은 작년에 지난 93년보다 35% 많은 3조7천
6백억원을 새로운 공장을 짓는데 투자했다.

대만 반도체 업계는 오는 97년까지 9조6천5백억원을 투입키로 했다.

문제는 단기간에 이익을 내야 하는 반도체 산업의 특성상 자칫 공급과잉이
일어날 경우 각 업체가 회복불능의 타격을 받게 된다는데 있다.

비관론자들은 올들어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판매가격이 급락하고 있는
것도 이같은 이유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실제 지난달 16메가D램 가격은 개당 43달러선으로 작년말보다 3달러정도
떨어졌다.

가격의 급락은 작년말 미국시장에서 예상과 달리 PC(개인용컴퓨터)특수가
일어나지 않아 PC메이커들이 반도체 재고를 떠안았기 때문이다.

비관론자들은 결국 반도체 경기는 하강국면에 처한 PC시장과 맞물려
내리막길을 걸을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2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