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이 불과 며칠 앞으로 박두했다.

사람들의 마음은 벌써 설에 가 있다.

전임 대통령의 비자금파문으로 상가경기마저 냉랭했던 지난 연말연시때와는
달리 설을 앞두고는 전만은 못해도 그런대로 대목기분이 도는 모습이다.

이런 때면 단골로 등장하는게 있다.

몇 십년을 두고 거의 변동이 없다.

물가와 체불임금, 그리고 귀성에 관한 얘기들이 그것이다.

2,800만명이 이동할거라는 얘기는 벌써 나왔고 체불일금에 관해서는 아직
얼마인지 얘기가 없으나 부도를 내고 쓰러진 중소기업이 작년에 1만4,000
개나 되었다니 엄청날 것이다.

우성사태에 관련된 회사들 만해도 보너스는 고사하고 밀린 임금을 설 전에
줄수 있는 형편인지 모르겠다.

설을 맞아서는 물자의 수요가 늘고 당국의 단속이 느슨해지는 틈을 타
물가가 뛴다.

설 성수품만 뛰는게 아니다.

설과 무관한 상품과 각종 서비스요금도 덩달아 오른다.

그러면 당국은 부랴부랴 설물가 안정대책을 마련하는등 한바탕 소동을
벌인다.

바로 엊그제 있은 물가대책 차관회의도 같은 맥락이다.

정부가 물가에 관심을 쏟는건 당연한 일이다.

동시에 정부의 가장 중요한 책무이기도 하다.

물가안정이 결여된 성장은 거품이 되기 쉽고 임금상승과 소득증대도
별 의미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물가동향에는 정부 국민 할것 없이 모두가 민감하다.

안정이 최우선 과제라는데 이의가 없다.

그러나 안정대책, 물가안정의 수단과 방법에 이르러서는 논란이 많다.

긴 얘기, 원론적인 얘기는 접어두고 정부가 늘 써먹는 대책은 이제 그만둘
때가 됐다고 말하고 싶다.

우선 물가대책은 일관되고 꾸준해야 한다.

일년 내내 관심을 갖고 챙겨야 한다.

일이 터진 뒤에 허겁지겁 법석을 떠는 관행은 이제 버려야 한다.

이번 경우만 해도 그렇다.

쌀값이고, 생선 과일이고, 개인 서비스요금이고 이미 오를대로 올랐는데
설을 코앞에 두고 방출 증대다, 단속강화다 야단쳐 봤자 정작 설 물가안정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정부의 물가대책은 사후 약방문격이 아니면 실질 내용이나 효과보다 소리만
요란한 경우가 많다.

다음은 공권력 행정력으로 물가를 다스리는 관행이 갖는 문제점이다.

경찰력을 동원해 단속하고, 국세청을 시켜 세무조사 엄포를 놔 물가를
잡고, 심지어는 올린 요금을 환원시키는 등의 낡은 방식은 이제 버려야 할
때가 됐다.

무한정 계속할 수도 없으려니와 그렇게 해서는 물가의 진정한 안정, 구조적
안정을 실현할수 없겠기 때문이다.

물가는 여러가지 복합적 요인에 의해 변동한다.

실물부문의 수요와 공급, 금융부문의 통화량, 임금 부동산값 원료 금리
등의 원가요인 변동, 유통사정에다 심리적 요인 등이 모두 영향을 미친다.

계절적 요인도 무시못하고 한번 오르면 내리기 힘든 하방경직적 속성도
생각해야 한다.

따라서 물가대책은 사전적 안정노력이 중요하며 평소 여러 복합요인을
주의깊게 살피고 미리미리 다스려야 한다.

물가대책도 이젠 구시대의 후진적 관행을 버리고 선진화돼야겠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2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