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리 플레이어는 세계에서 제일가는 벙커플레이어중 한 사람이다.

그는 모든 골퍼들의 문제는 샌드에 대한 두려움에서 찾을수 있다고
말한다.

다음의 일화는 이러한 게리 플레이어의 지적이 얼마나 정확한가를
웅변하고 있다.

78년도 브리티시오픈에서 일본의 토미 나카지마선수는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 17번홀에 이르렀을 때까지 우승을 넘보고 있었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세계의 모든 골프관계자들이 경악해 하면서 가슴을
졸이고 있었다.

그런데 나카지마의 세컨드샷은 그만 저 유명한 로드홀의 벙커로
들어가고 말았다.

그리고 나카지마는 아홉타만에 벙커아웃을 하였다.

우승이 단숨에 물거품이 되었음은 물론이요, 그후로부터 로드홀의
벙커를 "나카지마벙커"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러나 골프장 설계가인 로버트 트렌트 존스 주니어는 이렇게 말한다.

대부분의 골퍼들은 벙커를 보면 흠칫 흠칫 놀라는 경향이 있다.

그가 해변에서 골프하기를 좋아하지 않는한 그렇다.

그렇지만 벙커는 코스에서 목표지점을 설정해주거나 전략을 암시하는
설계가의 최고의 실마리다.

또 탈출 방법을 알기만 한다면 부가타를 구제해주기도 한다.

코스설계가가 골프코스를 만들때 벙커를 어떻게 사용하였는지를 안다며
골퍼들은 오히려 자기볼이 벙커에 들어가기를 원하기도 할 것이다.

결국 벙커는 워터해저드나 나무들보다는 골퍼들에게 훨씬 우호적이라
할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골퍼들은 골프코스의 난이도를 벙커수에
비례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경향이 있다.

한편 존스 주니어는 벙커의 내력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분석하고
있다.

초창기의 골프코스에서 벙커는 토착적인 것이었다.

그것들은 대부분 코스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었는데 움푹 패인 바람을
피할수 있는 움푹 패인 곳이었다.

그래서 초기의 코스디자이너들은 페어웨이나 티잉그라운드를 이것들과
조화시키려고 애썼다.

그러다가 골프가 상당히 대중화되어 발상지인 스코틀랜드를 넘어
잉글랜드까지 퍼지고 나서야, 벙커는 비로소 전략적인 해저드로
취급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때도 벙커는 단지 미스샷에 대한 응보수단으로 취급되었을
뿐이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보비 존스나 앨리스터 매켄지같은 설계가에
이르러서 드디어 벙커는 초보자 골퍼만이 아닌 모든 수준의 골퍼들을
시험 할수 있는 형태로 취급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그때부터 골프코스에서의 벙커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뉘게 되었다.

하나는 주위 지형을 감안해 볼때 오히려 벙커에 볼이 빠지는 것이
나은 종류의 벙커이고 다른 하나는 어떠한 희생을 치르고라도 절대로
들어가서는 안되는 벙커이다.

그러므로 골퍼들이 무조건 벙커를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이러한 분석을
통하여 벙커를 대하게 되면 벙커에 대한 콤플렉스로부터 탈출할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2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