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사에 책임소재를 분명히 밝혀두는 것은 조직을 운영하는 관리자의 위치나
개인의 업무를 처리하는 차원에서 매우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흔히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다.

책임에 따른 권한과 의무는 업무의 수준을 결정짓는 양대요소로서 이것의
균형없이는 업무 담당자의 최선을 기대하기가 힘들다.

권한이 일의 즐거움을 느끼게 한다면 의무는 일을 신성시하게 한다.

일이란 무리없이 진행되는 과정에는 책임소재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지만
목표가 완료되었거나 중도에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에는 신상필벌을 위해서도
그것을 밝힐 필요성이 있다.

그러나 가끔 근거가 애매하거나 애초에 미설정되었을 경우가 많다.

이러한 상황에서 진정한 공로자에게 상이 돌아가지 않고 엉뚱한 사람이
득을 본다거나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나몰라라 하는 분위기가 지속되면
구성원간에 갈등요인을 싹트게 함으로써 조직의 응집력을 서서히 부식시키는
결과를 만든다.

조직이 이러한 책임소재의 사전 명시에 철저하지 못한 것은 어쩌면
집단주의적 내지는 온정주의적 사고방식에서 오는 역기능을 간과한 결과가
아닌가 싶다.

이해를 같이 하는 집단내에서는 너와 나의 세세한 구분보다는 전체의
화합을 먼저 고려하는 마음가짐을 우선시한다.

이심전심이라 하여 문서나 말로써 확약하기 보다는 마음과 마음을 헤아려
서로의 유대관계를 돈독히 맺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산업사회가 일찍 발달한 서구사회의 구조는 계약에 대한 관념이
필수적인 것으로 되어 있다.

그것이 문서상이냐 구두상이냐는 별개이다.

모든 것은 계약으로 시작하여 계약으로 끝난다.

계약은 약속이고 권리이며 책임소재에 대한 근거가 되는 것이다.

우리 기업이 외국기업과의 거래에서 바로 이계약에 대한 준비를 경시하여
당황하는 경우가 많다.

현대의 조직형태는 라인기능과 스태프기능이 크게 구분되지 않고 혼재된
경우가 많아 서로간의 역할분담을 더욱 명확히 할 필요성이 있다.

그야말로 "전부의 책임은 누구의 책임도 아니다"와 같은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따라서 팀제나 수평조직 등으로 변화를 시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조직
기능의 효율성을 증대시키기 위해서는 구성원 각자에게 책임소재를 분명히
인식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2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