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내전화 xxxx으로 연락하십시오".
"자동차를 세차를 원하는 직원을 xxxx번 OOO에게 연락바랍니다"
시내 공중전화 박스나 동네어귀의 담벼락에 붙어 있는 용역업체의
광고판이 아니다.
국내 기업들의 사내 게시판에 붙어있는 심부름 센터의 안내문구다.
최근들어 이같은 "사내 심부름 센터"를 설치하는 회사가 늘고 있다.
회사업무와 관련된 심부름 뿐만이 아니다.
콘도예약 여권수속과 같은 종업원 개개인의 자질구레한 일까지 회사에서
대신해준다.
삼성전기는 외부 용역업체를 고용해 "사내 대행 시스템"을 구축했다.
현대전자와 오리온전기는 아예 종업원의 심부름을 해주는 전담부서를
설치해 운용중이다.
삼성중공업은 은행이나 동사무소의 창구를 연상케하는 "비즈니스
써비스센터"를 개설했다.
회사가 종업원의 "심부름꾼"을 자청하고 나선 셈인데 여기에는 두가지
목적이 있다.
종업원 만족과 업무집중도의 제고다.
종업원 개인의 일까지 도맡아 해줌으로써 회사에 대한 종업원들의
애착심을 고취하고 동시에 잡무에 시달리는 시간을 줄여 업무에 집중할
수있도록 한다는 취지다.
사내문서 배달을 외부용역업체에 의뢰한 삼성전기의 예를 보자.
삼성전기 수원사업장은 20개동의 건물로 돼있다.
종업원도 1만명을 웃돈다.
사무실간 문서전달에도 적지않은 시간이 소요된다.
때로는 30분이상이 걸리기도 한다는 것.
이같은 업무시간의 손실과 종업원들의 불편을 덜어주기위해 외부
용역업체에 사내 문서수발을 의뢰했다는 설명이다.
용역업체는 오전과 오후 두차례씩 하루에 네번 각 사무실을 돌며
문서를 거둬 해당부서로 전달한다.
삼성전기는 또 종업원들이 은행에 직접 가지 않고 회사안에서 공과금
등을 납부할 수 있도록 은행원들이 하루에 두번씩 회사에 들어와 입출금
업무를 보는 "이동은행"을 유치하기도 했다.
현대전자와 오리온전기는 각각 "행정지원팀"과 "업무지원팀"이라는
별도 지원부서를 설치해 종업원들의 심부름을 해주고있다.
여기서는 콘도예약 기차표예약등에서부터 주민등록등본과 같은 각종
증명발급과 관련된 일까지 대행해준다.
특히 오리온전기의 경우엔 전용세차장을 마련해 세차대행까지도
해주고있다.
삼성중공업은 여기서 한발 더나가 컴퓨터 인터넷 외국어 등에 대한
교육까지 심부름센터인 "비즈니스 써비스"에 맡기고있다.
그렇다면 기업들이 실제로 심부름 센터를 가동해서 얻은 이익은
얼마나 될까.
삼성전기는 "종업원 전체가 낭비하는 시간이 연간으로 따져 6천7백42분
절감됐다"(경영기획실 조경수이사)며 이를 돈으로 계산할 경우 임원은
초당 10.2원, 부장은 7.7원, 과장은 5.5원, 사원은 4.2원으로 쳐서
약 3억원에 이른다고 밝혔다.
또 각 부서에서 문서전달 업무를 하던 직원에게 다른 업무를 맡겨
인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부수적인 효과도 거두었다는 것.
심부름 센터를 가동한 효과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플러스 알파가 있다.
개인적인 일들을 회사가 대신 처리함으로써 종업원들이 심리적 부담에서
벗어나 근무시간에 충실히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예컨대 인감증명이 갑자기 필요하게 됐을 경우 종업원은 이를 발급받기
위해 시간을 허비하게 된다.
업무에 지장을 주는 것은 단순한 시간낭비만이 아니다.
오히려 하던 일을 빨리 끝내고 동사무소로 가야한다고 중압감을 느끼는
것 자체가 일을 더 방해한다.
허둥거리다 큰 실수를 범하는 사례도 있다.
이런 심리적인 부담을 없애 일에만 열중할 수 있게 하는 것만으로도
회사는 엄청난 이익을 보는 것이라고 오리온전기 관계자는 말했다.
심부름 센터의 또 다른 효과는 바로 종업원 만족도를 높일 수 있다는 것.
쉽게 말해 종업원들이 좀더 편리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해 근무의욕을
높여준다는 것이다.
음악회 등 각종 문화행사 예약이나 의료상담을 해주는 것은 기본에
속한다.
실제로 현대전자 업무팀의 이보화씨는 "회사가 종업원들을 정말로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고 밝혔다.
사내 심부름 센터가 종업원들이 애사심을 높이면서 업무의 생산성도
높이는 효과를 거두고 있는 이상 종업원들의 어떤 허드렛일이라도
대신해주겠다고 나서는 회사는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 같다.
<조주현기자>
(한국경제신문 1996년 2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