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주 < 고등과학원 설립기획실장 >

세계 경제포럼(WEF)및 국제경영개발연구원(IMI)의 국가경쟁력평가 결과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국가경쟁력은 세계 24위 수준이다.

선진국에 비해 경쟁력이 낮은 근본 원인으로는 과학기술력의 취약성에
기인한다는 지적이 많다.

우리의 경제개발 초기단계에서부터 지금까지 추진해온 성장 제일주의와
양적 경제목표달성 방식으로 인해 국내외 환경변화에 대한 대응력및 새로운
발전 원동력 발굴이 상대적으로 소홀히 취급되어 왔고 그때문에 국제경쟁력
이 취약해졌다는게 일방적인 해석이다.

경쟁력 강화를 위해 추진되고 있는 세계화의 당면과제 중 과학기술분야가
가장 시급하고 주요한 대상 과제로 부각되고 있다.

과학기술의 세계화란 환경적으로는 국경이 없어진다는 차원에서 무한경쟁의
시대로 일컬어 진다.

그러나 그 의미는 기술개발과 필요기술의 이전, 그리고 첨단기술의 활용
등에 있어서 이제까지와는 달리 세계적으로 시계와 활동 범위를 넓혀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첨단기술의 특징적 양상은 과학적 발견 및 발명으로부터 실용화하기
까지의 시차가 급속히 단축되고 있으며 서로 다른 기술끼리 융합해 새로운
기술을 창출하고 있다.

곧 기초과학이 응용기술로 곧바로 연계됨에 따라 기초과학의 바탕없는
새로운 기술 개발은 한계에 직면하게 됐다.

따라서 자체기술력이 취약한 국가와 기술선진국간의 기술격차는 더욱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선진국들의 기술개발 정책을 살펴보면, 일본은 해외기초 기술의 무임
승차론에 근거한 세계적 비난에 대응하여 창조적인 기초연구 강화에 정책의
주안점을 두고 있다.

역대 인구 비례로 볼 때 최다 노벨상 수상국가인 영국은 산업기술 경쟁력
저하가 비효율적인 과학기술 정책에 기 한다고 판단.기초과학연구를 강화
하는 추세이다.

우리 정부도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획기적인 기초과학육성을
위하여 고등과학원 설립을 추진하게 됐다.

부존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는 기술과 인력 개발을 통하여 국제경쟁에
대처할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 70년대 설립된 한국과학기술원(KAIST)은 우리나라 과학기술
인제 양성의 요람으로 지금까지 우리나라 과학기술계의 중추적인 인재를
배출해 왔다.

95년의 경우 우리나라 전체 이공계 박사의 28.1%를 배출한 바있다.

최근 신제품 신기술에 대한 개발속도가 가속화 되면서 이에 부응하는
과학기술인력의 양성.공급이 매우 큰 관심사가 되고 있다.

이제는 선진기술 모방 차원의 기술개발 형태에서 탈피, 21세기에 세계를
선도할 창조적인 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선진국형 과학기술 인력을 양성할
때이다.

이러한 미래지향적인 창조적 인력 양성 과정인 포스트 닥(Post-Doc)이
고등과학원에서 활발히 추진될 것으로 기대된다.

선진국의 예에서 볼 때, 응용개발및 제품개발기관은 연관이 많은 공업단지
인근에 주로 위치하고, 대학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기초과학분야 연구소는
대학내 또는 대학단지에 위치하고 있다.

이는 주변관련 기관과의 학문적, 인적 연계 강화로 연구개발의 시너지
(synergy)효과를 극대화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주요 이공계 대학의 65%가 밀집해 있고 또한 기초 과학자의
60~70%가 거주하고 있는 수도권에 고등과학원이 설립 됨은 당연한 귀결이고
합당한 판단이었다고 본다.

특히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메카로 상징되는 KAIST자리에 설립됨은 그
역사성을 계승한다는 의미에서도 그 의의가 클 것이다.

우리나라는 일인다 GDP(국내총생산) 1만달러, 세계 교역규모 11위의 경제
강국이면서 유엔 이사국이다.

조만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도 가입 하게 된다.

그러나 후진에게, 자라나는 어린 학생들에게 보여줄 뚜렷한 과학명소 하나
제대로 보존 된 것이 없다.

이런 현실 속에서 볼 때 KAIST발상지에 고등과학원을 설립하는 것은 기초
과학 육성뿐만 아니라 역사적 의미와 교육적 차원에서도 그 의의가 크다.

따라서 현재의 상징적 건물들은 원형이 보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개축
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나라의 과학 명소로 존속돼 자라나는 꿈나무들에게
과학의 꿈을 심어주는 삼아 있는 과학의 전당으로 활용됐으면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2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