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보험정책이 오락가락 갈피를 못잡고 있다.

보험업계의 경쟁력강화와 보험가입자 보호를 위해 지급여력이 부족한 17개
생명보험사들에 대해 지난해 9월 증자명령및 권고를 했던 재정경제원이
증자 시한을 한달정도 남긴 지금에 와서 갑자기 입장을 바꾼 것이다.

재경원은 지난 15일 생보사의 지급여력 기준을 현재의 "순자산 100억원"
에서 "책임준비금의 1%"로 바꾸는 내용으로 "생보사 지급능력에 관한 규정"
을 바꿔 이달말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다.

그 결과 증자금액이 대폭 축소조정되고 증자명령 불이행에 대한 제재조치도
크게 완화됐다.

그러면 재경원의 입장이 갑자기 바뀌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몇달 안에 수백억원씩 증자하기가 어렵다는 현실을 인정한 때문인가,
아니면 증자명령을 내릴 때의 명분이 없어졌거나 중요한 상황변화가
생겼는가.

지난해 9월 증자명령을 내렸을 때부터 해당 보험사들의 반발은 충분히
예상됐었다.

지난 80년대 후반 생보사들이 무더기로 인허가된 뒤 모두 23개 생보사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였지만 상위 5개사와 나머지 회사들의 영업실적및 수익성은
큰 차이를 보였다.

게다가 15대 그룹의 신규진입을 막다보니 소액주주들의 증자능력이 원천적
으로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영업을 한지 몇 십년이나 된 기존 생보사들과 설립된지 불과 5~6년
밖에 안된 신설 생보사들에 같은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불공평하다는 비난도
많았다.

그러나 이같은 상황논리가 경쟁력강화와 보험가입자 보호라는 명분에
우선할 수는 없다.

바꿔 생각하면 상황이 어려울수록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야 할 필요성은
그만큼 더 크다고 할수 있다.

아울러 보험시장의 개방및 성장전망에도 달라진건 없다.

우리가 OECD에 가입하면 보험시장은 대폭 개방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외국 생보사에 비해 규모가 훨씬 작고 영업력이 뒤떨어지는 많은
신설 생보사들이 어려움을 겪으리라는 것은 물으나 마나다.

한편 지난해에는 대형 사고가 잇따른 탓에 보장성 보험상품 판매가 크게
늘었고 금융 종합과세 영향으로 뭉칫돈이 몰려 생보시장의 성장전망이 매우
밝다.

이처럼 급성장하고 있는 국내 생보 시장을 외국 생보사에 뺏기지 않으려면
대책마련을 서둘러야 할 판인데 증자 명령을 흐지부지한 것은 옳지 않다.

재경원은 보험 보증기금을 증액하는 방법으로 대처할 모양이나 이는 사후
수습책에 불과하며 그나마 피해의 일부만을 보상할수 있다.

따라서 문제 예방을 위한 대책마련을 서둘러야 하며 이의 일환으로 생보
업계에 대한 규제완화를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된다.

정부는 이미 보험사의 자산운용, 생보사와 손보사의 부분적인 상호진출
등에 대한 규제를 완화했다.

그러나 핵심은 15대 그룹의 생보사 경영참여를 허용하고 경영이 부실한
생보사들의 합병을 통해 대형화를 이룩하는 것이다.

이 문제가 풀리지 않는한 보험정책의 선택폭은 매우 제한되게 되며 경제력
집중방지와 경쟁력 강화및 보험계약자 보호라는 정책과제 사이에서 혼선을
거듭하게 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2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