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은 추석과 함께 우리민족의 가장 큰 명절.설날이 되면 각지에 흩어져
살던 일가친척이 고향에 모여 어른께 세배하고 차례를 올린다.

세배는 살아있는 사람들 사이의 의례이며, 차례는 조상들에 대한 의례이다.

설날 제사는 차례와 성묘로 대별되는데 설날 아침 일찍 사당이나 대청에
세찬과 세주 떡국 등을 진설하고 예를 올리는 것을 차례라 하고, 조상들의
묘앞에 간단하게 상을 차려놓고 예를 올리는 것을 성묘라 한다.

설차례는 떡국차례라 하여 떡국을 제수로 올리는 것이 상례이며 그밖의
제수는 기제사때와 마찬가지.

차례를 지낸 후 음복시에는 장만한 음식을 골고루 맛보아야 다복한다고
전해진다.

차례를 마치면 성묘를 한다.

상석이나 소반 위에 음식을 차리고 돗자리를 깔아 그 위에서 예를 올린
다음 묘 앞에 둘러앉아 진설한 음식을 먹고 묘 주위를 살핀다.

설날은 한민족의 옛 풍속과 전래된 중국의 민속이 동화돼 생겨났다는 것이
민속학계의 일반적인 의견이다.

고려시대에는 원정 상원 한식 단오 상사 중구 동지 입관 추석을 9대 속절로
삼았고, 조선조의 "동국세시기"에는 한식 단오 추석과 함께 4대명절,

여기에 동지를 더하면 5대 명절이라 했으니 설날은 추석과 함께 우리민족
최고의 명절임에 틀림없다.

설은 농경사회에 뿌리를 두고 있다.

따라서 설을 시작으로 대보름까지 지신밟기, 달집태우기등 농경의례가
다양하게 펼쳐진다.

북청사자놀음 동래야유 안동차전놀이 등은 지방별로 발달한 이 시기의
놀이.

특히 줄당기기 줄싸움놀이등으로 불리는 색전은 암수줄이 엉긴 성행위의
모방주술적 형태를 상징하는데 생성력이 왕성한 소년이나 여성들이 주로
한다.

주로 고을단위로 동서로 나눠 승부를 겨루는데 서편이 이겨야 풍년이
든다고 믿어 왔다.

영일.안동 지방에서는 "설은 질어야 하고, 보름은 말라야 한다"고 하여
설에는 비나 눈이 오기를 기다렸다.

남자는 연날리기, 여자는 널뛰기를 하고 집안에서는 주로 윷놀이를 한다.

또 복조리를 걸어 복이 오기를 기다렸고 신발을 훔쳐간다는 야광이를
쫓기 위해 대문 근처에 체를 걸어두기도 했다.

< 김수언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2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