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업계가 격동기를 맞고 있다.

석유사업법 개정안이 지난해말 정기국회를 통과함으로써 "자유화"와
"개방화"의 변화가 코앞에 다가왔다.

97년부터는 유가가 완전 자유화되고 99년부터는 정제업 신규참여와 외국
업체의 국내 진출이 가능해짐에 따라 시장은 가격파괴 경쟁등으로 갈수록
혼란스러워질 전망이다.

삼성 한진등 그동안 정유업에 눈독을 들이고 있던 대그룹들이 앞다퉈
정유사를 차릴 경우 국내 정유사는 기존의 5사체제가 무너지고 많게는
10사 체제로 까지 갈수도 있다는게 업계의 우려다.

또 모빌 엑슨 같은 메이저들이 튼튼한 자금력과 앞선 노하우를 무기로
국내에 밀려들어올 수도 있다.

경쟁의 논리를 체질화하지 않은 기업은 언제 쓰러질지도 모르는 무한경쟁
상황이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정유업계는 달라진 시장환경에 대응, 그동안 굳어진 타성을 벗고 완벽한
체질개선을 이뤄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우선 거론되는 것이 인식의 전환이다.

그동안 제품을 생산해 공급하는 역할만을 담당해온 정유사들이 판매자
로서의 역할을 뼈저리게 인식해야 하는 시기가 됐다는 얘기다.

이제까지의 경쟁이 "신제품경쟁"이었다면 앞으로는 "신판매기법경쟁"으로의
전환이 요구된다.

또 정유사들의 시장경쟁원리 체질화와 함께 공정한 경쟁을 벌이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는 정부의 노력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정유회사들은 외국의 메이저와 경쟁하기 위해 튼튼한 재무구조를 갖추어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정부의 정책적 배려가 상당부분 필요한 실정이다.

우리나라의 석유마진율은 4.8% 내외로 일본에 비해 절반수준에 불과, 내부
기업자금 조성이 상대적으로 힘든 실정이다.

정부의 석유류 제품 가격정책이 그동안 세수와 물가에 초점을 맞춰 이뤄져
왔지만 정유업체의 재무구조개선에도 관심을 두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물류시설의 확충도 시급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온산~서울및 여천~서울 구간을 연결하는 남북송유관이 완공됐지만
정유소는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상태다.

어쨌든 다가오는 격동기는 30년의 한국 정유산업 역사상 가장 거셀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국내 업계가 어떻게 경쟁원리를 체질화하면서 이 격동기를 헤쳐나갈수
있을지 주목된다.

<권영설기자>

(한국경제신문 1996년 2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