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업계는 휘발유와 경유등 경질유의 품질경쟁과 마케팅력 강화로 공급자
시장(Seller''s Market)에서 수요자시장(Buyer''s Market)으로 옮겨가고 있는
시장환경변화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

"기름은 어느 회사 제품이나 같다"는 예전의 "상식"은 여지없이 깨지고
있는 형국이다.

자사제품의 품질을 보증하는 의미에서 휘발유에 브랜드도입 바람이 불더니
이제 경유에도 "상표붙이기"가 시작됐다.

타사보다 "더 나은 제품"으로 소비자를 찾아가겠다는 품질경쟁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서비스경쟁도 가열되고 있다.

정유회사 사장이 주유소에 나가 직접 기름을 넣고 신입사원들이 계열주유소
의 주유요원으로 며칠씩 근무하는 풍경이 최근들어서는 흔한 일이 됐다.

추운 겨울에 주유소 한귀퉁이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던 등유판매 풍경도
바뀌었다.

전화 한통이면 한 "말"도 배달이 되기 때문이다.

지난 80년대까지만 해도 보기 어려웠던 이런 일들이 일상화되는 이유는
정유시장이 바이어스마켓으로 급격히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90년대 이전까지만해도 석유제품시장은 완벽한 공급자 시장이었다.

국내최초의 정유공장인 울산정유 공장이 가동된 지난 64년 당시의 국내
정제능력은 하루 3만5,000배럴.

80년의 정제능력은 64만배럴로 16년 사이에 생산능력이 약"18배" 늘어났다.

그러나 같은 기간동안 소비량은 하루 2만배럴에서 49만8,000배럴로
"25배"나 증가했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소비를 생산이 산술급수적으로 뒤따라갔다는
얘기다.

공급자가 절대 우위에 선 시장이 펼쳐진 셈이다.

특히 70년대 두 차례에 있었던 오일쇼크는 공급자 시장을 더욱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80년 이후 이러한 시장에 조금씩 변화가 일어났다.

경제개발이 속도조절에 들어가면서 석유소비량 증가속도가 둔화됐다.

80년 이후 94년까지 우리나라의 하루 석유소비량은 3.4배 늘어나는데
그쳤다.

같은 기간 동안 생산능력은 2.6배 늘어나 생산과 소비가 균형을 맞추어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 후발주자인 쌍용정유(80년)와 현대정유(극동정유에서 93년 새롭게
출발)가 탄생하면서 휘발유를 중심으로 치열한 마켓셰어 전쟁이 본격화됐다.

시장의 기조가 바이어스마켓으로 반전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따라 정유업체들은 경쟁적으로 고객만족경영을 내세우며 기업체질을
바이어스마켓에 적응시키는데 주력하고 있다.

정유업계가 주력하고 있는 것은 품질경쟁이다.

유가가 완전 자유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가격경쟁이 어려운 현실 때문이다.

엔진세정기능을 갖춘 첨가제를 넣은 "테크론"(호남정유) "엔크린"(유공)"
수퍼크린"(쌍용) "이맥스"(한화)등이 저마다 "최고 기능"을 뽐내며 소비자
에게 다가가고 있다.

올들어서는 유공이 "파워 디젤"을 선보이고 쌍용정유가 "0.05 수퍼디젤"을
내놓으면서 경유시장에도 브랜드도입바람이 확산될 조짐이다.

회사들마다 품질관리팀을 발족해 계열주유소를 순회하면서 품질을 체크하는
품질경영을 펼친다고 요란하다.

주유소의 서비스경쟁등 "고객만족경영"의 도입도 확산되고 있다.

주유소를 "기름 넣는 공간"에서 또 다른 "생활공간"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바이어스마켓에 적응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정유업계의 경쟁적 체질개선
노력 덕분에 소비자들은 웃는 낯으로 주유소를 찾을 수 있게 된 셈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2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