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사기당한 9억원의 지급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한은은 문제의 당좌수표를 분실한 대동은행에 전적인 책임이 있다고 주장
한다.

인감과 명판을 육안으로 확인한 이상 한은엔 과실이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법조계에서는 위조된 인감이 실제와 다르다는걸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데도 9억원을 지급했다면 한은에게도 일정부분 과실이 있다고 지적
하고 있다.

그렇다면 개인과 은행의 거래에서 은행이 위조된 수표용지나 인감을 갖고
온 사람에게 부당하게 돈을 지급했다면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 걸까.

결론부터 말하면 수표용지나 인감이 육안으로 식별이 불가능할 정도로
정교하게 위조됐다면 은행의 지급책임은 없다는게 은행감독원의 판단이다.

자영업자인 이모씨는 자신이 가계수표를 발급한 적이 없는데도 가계당좌
계좌에서 돈이 1백만원 인출된 것을 발견했다.

은행에 가서 알아보니 지급제시된 가계수표가 변조된임을 알았다.

이씨는 은행이 변조사실을 발견하지 못해 피해를 입었다며 은행측에 배상을
요구했으나 은행은 이를 거부했다.

이씨는 이에따라 은감원 금융분쟁 조정위원회에 조정신청을 냈다.

은감원은 이에대해 가계수표가 변조된 것은 육안으로 식별이 곤란하다며
은행에 손해배상책임이 없다고 결정했다.

가계수표는 감식기로도 숫자로 표기된 금액만 희미하게 판별이 가능할뿐
발행일자와 문자로 표기된 금액은 식별이 어렵다는 이유에서였다.

회사원 김모씨도 통장을 잃어버려 분실신고를 하러가보니 이미 돈이 인출된
것을 알았다.

김씨는 지급청구서에 찍힌 도장이 통장에 찍혀 있는 것과 다른데도 돈을
지급한 것은 잘못이라며 배상을 요구했으나 은감원은 역시 은행의 손해배상
책임이 없다고 판정했다.

비밀번호도 일치하는데다 얼핏 보면 위조된 인감이 진짜와 식별이 어렵다는
근거에서였다.

은행에서 예금을 지급하는 업무는 신속성이 요구되기 때문에 "은행은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다했다"고 덧붙였다.

은감원은 따라서 가계수표등을 받을때는 주는 사람의 신분을 확인하고
통장등을 분실했을 경우엔 즉시 분실신고를 내야한다고 권장했다.

< 하영춘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2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