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브레멘 = 김희영 기자 ]

역사와 문화, 공업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독일 북부의 중심도시 브레멘.

베저강이 도시를 관류하며 운치를 더하는 브레멘의 중앙역에서 동쪽으로
30분가량 차를 달리면 메르세데스거리에 메르세데스 벤츠사의 공장이 눈에
들어온다.

모두 1만3천명의 종업원이 이곳에서 근무하고 있다.

에스엘, C-클래스, T모델, 트렌스포트 등 4종의 차량을 생산하고 있다.

주력차종인 에스엘 로드스터 생산공장 내부는 근로자들이 열심히 일에
몰두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아침 10분, 저녁 30분의 휴식시간 외에는 노동손실이 거의 없다.

2교대 16시간 형태로 주당 35시간의 짧은 근로시간이지만 생산성은
개도국보다 2배가량 높다.

브레멘공장내에는 근로자대표기구로 종업원평의회가 조직돼 있다.

산하에 인사 고용 임금 일자리보장 교육 등 분야별로 9개위원회가
조직돼 있어 근로자들의 근로조건 개선방안 등을 다루고 있다.

이회사의 노사간 대화통로는 항상 열려 있다.

성장일변도였던 브레멘은 불황이 찾아온 80년말부터 근본적인 변화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경기침체가 올경우 가격인하로 대처했으나 치열한 경쟁과
자동차 공급과잉에 따라 생산단가 인하가 시급해졌다.

브레멘공장은 오래전 자문회사에서 제시했던 경영쇄신 방안을 꺼내
다시 검토하기 시작했다.

그결과 생산라인 재편에 따른 인력감축이 시급하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경영진은 이런 판단을 즉시 평의회에 전달하고 협상테이블을 열어
전반적인 경영감축계획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했다.

높은 인건비부담과 잉여인력이 생산성을 크게 저해한다는 경영진의
논리를 검토한 평의회측은 조직감축에 동의하는 대신 보완책마련에
치중했다.

노사간 합의에 따라 인력감축이 연차적으로 시행됐다.

지난 91년 1만6천명이었던 근로자수가 1만3천명으로 18.7% 줄어들었다.

그러나 차량생산대수는 19만대를 유지할 만큼 생산성은 크게 향상됐다.

93년의 경우 생산비가 30%까지 절감되는 효과를 보기도 했다.

대부분의 부품을 하청생산으로 돌려 인력절감을 꾀했다.

브레멘공장의 우드리터 노동자평의회장은 "회사가 망할수도 있다는
판단이 든 이상 감축안에 동의하는 것이 노사 모두를 살리는 길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브레멘공장의 노사는 인력감축으로 인한 근로자의 충격을 최소화
하는데도 전력을 기울였다.

퇴직근로자가 55세가 되면 기본급의 80%를 회사에서 지급해 주기로
노사가 합의, 고령근로자의 퇴직후 생계보장안을 마련했다.

또 전직을 원하는 근로자에게 직업재교육을 실시해 대부분 재취업의
길을 열어줬다.

당초 회사의 인력감축에 비판적인 근로자들도 일단 노사가 합의한
결정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생산성 향상을 위해 노사가 기울이는 노력도 각별하다.

단순반복 작업뿐만 아니라 행정작업등도 병행해야 하는 팀제작업
(groupen arbeit)을 지난 80년말부터 노사가 3년간 협의한뒤 다시
3년간의 시험운영을 거쳐 본격 실시하고 있다.

사실 팀제작업 도입은 노조가 더 적극적이었다.

고임금을 받을수 있는데다 인간적인 노동을 가능케 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팀제작업 실시이후 연간 6천만마르크의 생산비용을 절감하고 있다.

노조측은 자동화된 생산라인의 효율적인 운용을 위해 일률적으로
쉬었던 토요일근무를 부활, 1교대근무를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또 하루 9시간을 근무하는 대신 한달에 하루를 쉬는 변형근로시간제도
회사의 필요에 따라 탄력적으로 운용키로 방침을 정했다.

브레멘공장의 마후이 구매국장은 "노사가 신뢰하기 때문에 이같은
자발적인 노력이 가능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브레멘공장은 복리후생에도 세심한 관심을 쏟고 있다.

1년이상 근무자에게 주택융자금으로 6개월치 급여를 지원하는가 하면
재산형성 저축을 하도록 근로자 한사람당 연간 52마르크를 지원하고
있다.

브레멘공장은 궁극적인 근로자복지는 교육에 있다는 판단에 따라 시내에
교육센터를 설립하고 노사간 재교육프로그램을 마련, 필수교육과 취미교육
등 다양한 자기계발의 기회도 제공하고 있다.

마후이국장은 "근로자들 스스로 회사와 자기를 동일시 하도록 하는게
회사의 가장 큰 경영목표다.

이를위해 근로자를 수단으로 보지않고 경영변화상태를 상세히 알수
있도록 모든 정보를 공개한다"고 소개한다.

우드리터회장도 "1%의 임금을 포기하더라도 일자리를 보장받고 직업
교육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는데 주력한다는 것이 노사간의 공감대"라고
밝힌다.

세계적인 차량메이커 메르세데스 벤츠.지금까지 쌓아올린 명성뒤에는
인간중심의 경영철학이 뒷받침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2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