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도시계획가 에빈이처 하워드는 1944년 꿈같은 전원도시(Garden
City)의 설계도를 발표했다.

천상도시의 이미지를 살리고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꾀했다는 이 도시는
734만5,000여평이나 되는 광활한 땅의 중심부 122만4,000여평 안에 건설되는
원형도시로서 3만2,000명이 살도록 설계됐다.

6개의 대로로 도시를 분할한 뒤 중앙 6,700여평에 물이 넘치는 정원을
꾸미고 그 주위에 17만7,000여평에 달하는 아케이드를 건축하도록 했다.

이것 역시 레크리이션 용도의 공원이다.

그 주변에다는 시청 음악당 극장 박물관 미술관 병원을 배치했다.

그리고 전원과 인접한 도시의 외곽에는 1,000세대를 수용하는 근린주구를
만들고 그곳에 학교 도서관 집회소 교회가 들어서도록 했다.

하워드의 이 전원도시 계획은 그의 추종자들에 의해 추진돼 지금 영국의
레치워스와 웰웬이 그 모델로 남아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근래 조성된 신도시를 가리켜 "전원도시"라고 부르지만
그것이 과연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어느정도 염두에 둔 것인지는
의심스럽다.

특히 서울은 로널드 레이스의 말대로 그 누구도 제어할 수 없이 멋대로
자라고 있는 "메가로폴리스"의 표본이다.

콘크리트 덩어리와 아스팔트로 이루어진 서울의 풍경은 잔인하고
살벌하기만 하다.

푸르름은 도시의 거친 면모를 부드럽게 만든다지만 서울에는 공원이나
녹지도 태부족이다.

환경부의 조사에 따르면 현재 국민1인당 녹지면적은 1.8평, 도시공원
면적은 1.3평에 지나지 않는다.

특히 서울시민 1인당 녹지면적은 0.2평 남짓한 형편이고 보면 서울이
얼마나 비인간적인 살벌한 도시인가는 짐작되고도 남는다.

서울의 녹지공간은 고궁이 상당한 부분을 점하고 있다.

경복궁 창경궁 덕수궁 종묘의 공간은 모두 27만2,000평이나 된다.

고궁의 문을 걸어잠그고 관람객들에게만 유료로 공개해 오던 당국이
창덕궁을 제외한 4대 궁을 평일 점심시간(12~1시)에 한해 직장인들에게
무료로 개방한다는 소식이다.

뒤늦은 감은 있으나 도심 직장인들의 휴식공간이 늘어나고 아울러 그들이
문화재를 쉽게 접할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반가운 일이다.

말뿐인 문화조성사업 보다는 이런 실질적 조치가 국민들의 피부에 더 잘
와닿는 것이 아닐까.

하루속히 고궁이 국민 모두에게 항상 공개되는 휴식공안이 됐으면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2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