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은 줄었는데 경비는 많이 쓰고, 게다가 부실여신이 증가해 건전성마저
크게 개선되지 않은게 작년 시중은행들의 경영성적표다.

잘 나간다고 소문난 모범은행들마저도 다른 은행보다 상대적으로 경영을
잘 했을지는 모르지만 절대평가로 보면 94년보다 나아진 대목을 찾기
어렵다.

증시침체로 업무이익이 줄어든 탓이 있기는 하지만 금리자유화이후
치열해진 경쟁으로 그만큼 여건이 좋지 않았음을 엿볼수 있다.

이런 가운데에서도 수익성에서는 상업은행과 조흥은행이 다른 은행보다
좋은 결과를 냈다.

건전성면에서는 신한은행과 한미은행이 돋보였다.

내부유보부문은 하나 보람등 후발은행이 충실했다.

반면 동화 동남 보람은행은 수익성이 아주 저조했으며 서울은행은 부실
여신증가등으로 건전성이 오히려 악화됐다.

조흥 상업 제일 서울등 대형은행들은 각종 충당금적립비율이 후발은행보다
현저히 낮았다.

그동안 선두자리를 고수하던 제일은행의 각종 지표가 일제히 낮아진 것도
특기할만 하다.

지표별로 보면 지난해 은행들의 업무이익과 당기순이익이 급감한 영향으로
수익성 측면에서 거의 모든 지표가 급속히 나빠졌다.

시중은행중 가장 높은 1.41%의 총자산이익률(ROA)을 기록한 조흥은행도
94년의 2.50%에 비하면 1%포인트 이상 하락했다.

94년도에 대형은행들이 대거 주식매매익을 낸 탓에 뒤처졌던 신한은행이
지난해에는 서울 상업 제일은행등을 제치고 2위로 부상했다.

조흥은행 다음가는 ROA를 올렸던 서울은행은 상업은행과 동률을 기록했다.

외환은행과 한미은행은 총자산이익률이 1%밑으로 하락, 대형은행중 하위권
에 머물렀다.

신한은행이 1인당 업무이익에서 7천92만원으로 1위를 차지, 1인당 생산성이
가장 높았다.

각종 자구노력을 기울인 상업은행은 5천4백87만원으로 조흥 제일 서울
외환은행등을 앞지르면서 하나은행(5천6백23만원)에 이어 3위를 기록했다.

외환 한미은행은 총자산이익률과 함께 1인당업무이익등에서도 부진,
생산성이 낮았다.

자금운용의 성과를 나타내는 총자금운용이익률은 전반적으로 하락했으나
조흥은행이 1.74%에서 1.80%로 올라가고 상업은행도 1.31%에서 1.48%로
올라갔다.

제일 서울 외환 신한등 대부분의 은행은 하락했다.

건전성지표들은 다소 호전됐다.

대형은행의 경우 6개월이상연체 대출금을 말하는 "고정"이하 대출(광의의
부실여신)비율은 1~2%포인트씩 낮아졌다.

그러나 제일 신한 한미은행은 이 비율이 오히려 높아졌다.

특히 그동안 건전성을 자랑하던 신한은행에서 부실여신이 늘어나 주목된다.

신한은행은 회수의문과 추정손실등 협의의 부실여신규모만해도 1천57억원
에서 1천6백25억원으로 증가, 상업은행보다 많아졌다.

증가율로 보면 53%에 달해 대형은행중 가장 높았다.

신용카드부문에서 부실여신이 증가한 영향으로 해석된다.

손실위험도가중 부실여신비율은 서울은행이 4.59%에서 4.69%로 소폭 증가,
제일 높았다.

제일 신한 한미은행등도 이비율이 증가추세를 나타냈으며 조흥 상업 한일
외환은행등은 하락했다.

그러나 건전성 지표중 하나인 자기자본비율은 대부분 은행에서 하락했다.

한일은행은 7.51%에서 8.68%로 오히려 높아졌다.

94년도에 1백%를 웃돌던 은행들의 주식싯가율은 지난해 주가가 하락함에
따라 87.56%로 낮아졌다.

이 비율은 주식의 싯가대비 장부가의 비율로 지난해의 은행들이 큰폭의
주식평가손실을 입었음을 반영한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기업들의 대출수요가 감소하면서 은행들이 유동성측면
에서는 다소 호전됐다.

1년이하 단기부채비율은 마이너스 0.39%를 기록했다.

그러나 업무용고정자산비율은 대부분의 은행에서 늘어났다.

이익이 남지않는 고정자산이 그만큼 많아졌다는 얘기다.

지난해 사옥을 구입한 한미은행이 50.20%에서 78.33%로 상승한 것을 비롯해
대형은행들이 5~6% 정도씩 높아졌다.

외환 신한은행등은 소폭 하락했다.

내부유보면에서는 2백77%의 대손충당금을 적립한 하나은행을 비롯해서
후발은행들이 우수했다.

하나은행은 또 퇴직급여충당금비율이 1백%, 적립비율이 2백18%를 기록했다.

반면에 조흥 상업 제일 서울은행등 대형시중은행들이 가장 저조했다.

< 김성택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3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