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잔데..." "여자가 뭘"하는 식으로 생각하는 사무실 분위기가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남자직원들도 여직원을 동료가 아닌 단지 여자로 보는
시각이 아직도 많아요"

동부산업 정보처리사업부의 김연미씨(25)는 과거보다는 많이 나아졌다지만
여성들이 직장에서 느끼는 "보이지 않는" 차별의 벽은 여전히 높다고
말한다.

김씨는 동부그룹 계열인 동부산업과 동부화학의 회계시스템을 개발 운영
하는 전문 커리어우먼.

동덕여대 전자계산학과를 졸업한후 지난 93년 동부산업의 대졸 여직원
공채 1기로 입사했다.

그래서 회사 안에선 자부심도 대단하다.

대리승진을 앞둔 요즘은 후배 여사원들을 볼때마다 선배로서 모범을
보여야겠다는 책임감에 어깨가 무겁다.

"올해가 직장생활 4년째로 대리승진 케이스입니다. 저희들이 길을 잘 닦아
놓아야 후배들도 편하겠죠"

물론 직장여성, 특히 무역업체나 제조업체 직장여성의 승진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는 그녀 자신이 잘 알고 있다.

"화장품회사에 다니던 한 대학선배는 진급에서 누락됐다는 말을 듣고
회사를 그만둘 각오까지 했습니다. 입사동기 남자직원들은 이미 승진한데
비해 별다른 이유없이 자신은 또 승진리스트에서 빠지자 사표까지 제출
했지요"

결국 회사는 부당한 승진차별을 인정했고 그 선배는 다른 남자 동기들보다
조금 "늦게" 승진할 수 있었다.

"먼저 실력을 쌓아라. 그리고 자기주장이나 신념을 떳떳이 밝히라"

그녀의 각오이자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충고다.

물론 그녀가 입사한후 "개인적인 차 심부름" "유니폼제"등 눈에 띄는
성차별적 관행들은 사무실내에서 많이 사라졌다.

"외부에서 손님이 왔을 때 주인된 입장에서 커피를 대접하는 정도는
나쁘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하지만 커피는 꼭 여직원들만 타야하는 건
아니잖아요"

신세대인만큼 자기주장도 분명하다.

여성에게 지방출장이나 숙.당직을 제외시켜주는 지나친 배려가 오히려
차별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고 김씨는 지적한다.

"상사나 남자직원들도 여사원을 여자가 아닌 "일꾼"으로 대해줘야 합니다"

직장내 성차별을 해결하는 문제는 제도를 바꾸는데 앞서 의식이나 문화를
고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고 그녀는 믿고 있다.

여직원 스스로 뚜렷한 직업관을 갖는 것은 기본이다.

정보처리기사 1급으로 최근 사내 전산교육에선 200여 사원중 2등을 했을
정도의 실력파 김씨.

첫 직장을 평생직장으로 생각하고 있는 그녀는 남자 동료들과도 공정하고
정정당당히 경쟁하고 싶어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3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