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고위 관리들의 가장 명예로운 퇴진은 "잉영치사"였다.

"잉령치사"란 나라에서 70살이 넘은 종2품 이상의 대신에게 현직
벼슬을 그대로 지닌채 관직에서 물러나게 하던 제도를 가리키는 말이다.

녹봉을 그대로 지급했음은 물론이고 중대한 국사에는 빠뜨리지 않고
참여시켰다.

조선조초에 영의정을 지낸 하연이 이 제도의 첫 수혜자였다.

그러나 "잉령치사"는 극히 드문 경우였고 조정관리들의 대부분은
당시 불문율처럼 지켜오던대로 70살이 되면 스스로 물러나기를 자청해
실직없이 녹만을 받는 산직이나 영직을 얻어 향리로 돌아가 노후생활을
즐겼다.

이처럼 "70세 정년"이 지켜지고 있었지만 개중에는 노욕을 부리는
사람들도 있었던 모양이다.

문종때 나이가 68세였던 예문관직제학 최덕지가 퇴직을 청원했을때
"아직 치사할 나이에 이르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물러가니 당시의 의논이
그를 칭찬했다"는 "실록"의 기록을 보면 당시의 분위기를 어느정도
짐작할수 있다.

최덕지는 "잉령치사"는 못했을 망정 명예퇴직은 한 셈이다.

명예란 본래 세상에서 훌륭하다고 일컬어지는 이름을 뜻하거나 자랑스런
평판을 일컫는 명사다.

그런데 어느때부터인가 이 말이 지위나 직명을 나타내는 말 위에 얹혀
쓰이는 형용사처럼 돼버리면서 본뜻과는 정반대의 의미로 둔갑해 버렸다.

"명예교수" "명예박사"는 이미 "전직교수" "학문상의 특별한 공헌이
없는 사람"쯤으로 여겨지고 있다.

"명예제대"란 아예 "장애인이 돼 하는 제대"쯤으로 생각하고 "명예퇴직"
은 이미 그것이 불명예라는 훈장을 안겨주는 의미로 전달된다.

명예란 대개의 경우 실제보다 지나친 속성을 갖고 있다는 중국의 명언이
실감나고 명예를 "장례의 상장"같은 것이라고 깎아내린 셰익스피어의
풍자가 오히려 마음에 와닿는 것이 요즘이다.

종신고용제의 원조였던 일본의 마쓰시타 전기가 창업주의 의지를 깨고
50대간부 4,500명의 명예퇴직을 유도할 계획이라고 한다.

국내 기업들에서도 인사적체를 풀고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명예퇴직"이
확산되는 추세다.

명예란 원래 남이 씌워주는 월계관이라 했다.

당사자들에게는 70살 아닌 50살에 쓰는 월계관이 가시면류관이 될 것이
뻔하지만 그 명예가 다시 얻지않으면 안될 명예의 담보가 되도록 노력할
밖에 현재로서는 뾰족한 수가 없을성 싶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3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