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옥이 이홍원으로 가니 시녀들이 화미조(화미조)에게 물을 끼얹어
목욕을 시키고 있었다.

보옥의 방 쪽에서는 여자들의 웃음소리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그 웃음소리로 미루어 보아 희봉과 보채, 이환 들이 이미 와 있는게
분명했다.

대옥이 방으로 들어서자 여자들이 환한 얼굴로 맞아주었다.

조금 전까지 뭔가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아니, 오늘은 누가 초대장을 낸 것처럼 이리도 다들 모였군"

이환이 사람들을 둘러보며 빙긋이 웃었다.

"전에 보내준 차 잘 받았지?"

희봉이 대옥에게 묻자 대옥이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이 상등차 두 병에
대하여 감사의 말을 하였다.

희봉이 보옥과 보채, 이환 들에게도 그 차를 보냈기 때문에 자연히
차맛에 관한 이야기로 화제가 옮겨갔다.

보옥은 그 차가 별로 맛이 없더라고 하였고, 대옥과 이환은 그런대로
맛이 있더라고 하였다.

보채는 맛은 제법 있는데 차빛깔은 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였다.

희봉은 차맛이 있다고 하는 대옥에게 차를 더 가져가라고 권하기도
하였다.

그러면서 희봉이 대옥에게 불쑥 농담을 던졌다.

"대옥 아가씨가 우리 집안의 며느리가 되면 내가 일을 많이 시킬 거야.

아마 그때는 한가롭게 차 마실 시간도 별로 없을걸"

그러자 대옥은 얼굴이 빨개지며 고개를 푹 숙였다.

"며느리라면?"

보채가 두 눈을 둥그렇게 뜨고 침대에 누워 있는 보옥을 쳐다보았다.

희봉이 며느리 운운한 것은 대옥이 보옥의 아내가 된다는 말이 아니고
무엇인가.

아무리 농담이라고 하지만 그 말을 듣고 보채는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시기심이 일어났다.

게다가 보옥은 뭐가 좋은지 까만 고약이 덕지덕지 발린 얼굴을 대옥
쪽으로 돌리며 빙그레 웃고 있었다.

보채는 당장이라도 방을 나가고 싶었지만 내색을 하지 않고 꾹 참았다.

오히려 희봉의 농담을 거들어주기까지 하였다.

"대옥이 얼굴 빨개지는 것 좀 봐. 이 집안 며느리되고 싶은 마음이
있기는 있는 모양이지"

"아이 몰라요"

대옥이 더 이상 그런 농담을 참지 못하겠다는 듯이 몸을 돌려 방을
나가려고 하였다.

"가긴 어딜 가.

그렇게 내빼면 진짜 며느리될 생각이 있다는 걸 만천하에 나타내는
거지"

이환의 말에 모두들 깔깔대고 웃었다.

대옥은 방을 나가려고 하다가 조씨가 들어서는 바람에 멈칫하였다.

조씨는 또 병문안을 온 것처럼 꾸몄으나 사실은 보옥의 침대 밑에
넣어둔 인형들의 효과가 나타났는가를 살피러 온 것이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3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