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당대표초청 관훈클럽 토론회] 김종필 총재..일문일답 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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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훈클럽(총무 임춘웅)은 8일 저녁 프레스센터에서 자민련 김종필총재를
초청, 토론회를 가졌다.
4당대표로는 맨 마지막으로 토론에 참가한 김총재는 초점이 되고 있는 독도
문제와 관련, 한일 국교정상화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는 한편 "이번 15대
총선을 통해 현정부의 국정능력미비로 빚어진 정치적 방황과 혼돈에 종지부
를 찍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다음은 패널리스트들과의 일문일답 요지.
=======================================================================
-김총재는 62년 한일회담당시 중앙정보부장으로 참석해 독도문제는 미국에
맡기자는 제3국조정안을 제기했었다.
이에대한 비난이 많다.
"모두 왜곡된 말이다.
나 자신이 한일회담에 관여했던 것은 한일보상청구권 문제 뿐이다.
박정희대통령의 지시를 받아 오히라일본외상과 무상 3억달러, 유상 2억
달러, 플러스 알파 1억달러에 합의해 대통령께 보고했다.
이케다총리와 대화중에 이케다총리가 한국이 독도를 자국영토라고 고집
한다면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한다고 하길래 한국 사람들을 자극하는 문제니
국교정상화후 논의하자고 했다.
독도폭파문제를 얘기하자 이케다총리도 웃었다.
당시에는 30대중반으로 혈기왕성한 시기여서 어떤 경우라도 일본에는 줄수
없다는 뜻으로 말한 것이다"
-일본으로 회담을 하러 떠날 당시 제2의 이완용이 되더라도 해결하겠다고
하더니 제3국조정안을 얘기하고 잊어버린것 아닌가.
"당시 국교정상화의 관건은 청구권문제였다.
그 당시 국민감정을 생각하면 1백억달러를 받아와도 무자비하게 비난
받았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달게 받았다.
당시 일본 외화보유고는 14억달러였다.
그 절반을 가져온 것이다"
-독도는 우리의 귀중한 영토이다.
이 귀중한 땅을 두고 폭파라는 망언을 했다.
창피하지 않은가.
"쓸모없는 땅이라고는 얘기하지 않았다.
양쪽에서 영유권을 주장했다면 국교정상화는 이뤄질수 없었다"
-한일국교정상화의 단초인 청구권문제 타결시 사과를 받았어야 일본의
망언을 막을수 있었다고 본다.
이런부분의 책임과 관련해 사과할 용의는 없는가.
"그 기간에 있었던 일에 대해 무한책임을 지고있다고 생각한다.
당시 한일회담은 외무장관의 책임하에 진행되었지만 미흡한 대처로 국민들
에게 계속 걱정을 끼친 것에 대해서는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자민련은 보수신념으로 뭉친 당이 아니라 정치적 패장들의 모임이라는
지적이 있다.
"이삭줍기"라는 얘기도 있는데.
"락수라는 말에는 동의할수 없다.
공산주의자가 아니라면 우리당은 누구에게 나 문이 열려 있다"
-이번 총선에서 어느 정도 의석을 획득할 것으로 보는가.
"될수 있는한 많은 후보자를 내려고 한다.
여러 상황으로봐서 캐스팅 보트를 행사할수 있는 의석은 틀림없이 확보할수
있다.
구체적인 의석수를 밝히는 것은 유권자에게 실례되는 일이다"
-기조연설에서 금융실명제등 개혁정책에 대해 동기가 불순하다고 지적
했는데.
"금융실명제 해놓고 야당측 자금줄은 끊고 여당은 여전히 풍성하다.
실제로 그렇다.
그런 것 예측하고 조치를 취한 것 아니냐"
-내각제를 무력으로 무너뜨린 장본인이 이제와서 내각제를 주장할수
있는가.
권력분점을 위한 정략때문이 아닌가.
"어불성설이다.
지금은 내각제를 할수있는 여건이 성숙돼 있다.
국민들의 총의에 의해 운영해 나갈수 있는 나라가 됐다.
내각제였다면 전직대통령비자금 문제와 같은 비리도 없었을 것이다.
대통령제만이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할수 있다는 주장도 받아들일수 없다"
< 김태완.이동주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3월 9일자).
초청, 토론회를 가졌다.
4당대표로는 맨 마지막으로 토론에 참가한 김총재는 초점이 되고 있는 독도
문제와 관련, 한일 국교정상화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는 한편 "이번 15대
총선을 통해 현정부의 국정능력미비로 빚어진 정치적 방황과 혼돈에 종지부
를 찍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다음은 패널리스트들과의 일문일답 요지.
=======================================================================
-김총재는 62년 한일회담당시 중앙정보부장으로 참석해 독도문제는 미국에
맡기자는 제3국조정안을 제기했었다.
이에대한 비난이 많다.
"모두 왜곡된 말이다.
나 자신이 한일회담에 관여했던 것은 한일보상청구권 문제 뿐이다.
박정희대통령의 지시를 받아 오히라일본외상과 무상 3억달러, 유상 2억
달러, 플러스 알파 1억달러에 합의해 대통령께 보고했다.
이케다총리와 대화중에 이케다총리가 한국이 독도를 자국영토라고 고집
한다면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한다고 하길래 한국 사람들을 자극하는 문제니
국교정상화후 논의하자고 했다.
독도폭파문제를 얘기하자 이케다총리도 웃었다.
당시에는 30대중반으로 혈기왕성한 시기여서 어떤 경우라도 일본에는 줄수
없다는 뜻으로 말한 것이다"
-일본으로 회담을 하러 떠날 당시 제2의 이완용이 되더라도 해결하겠다고
하더니 제3국조정안을 얘기하고 잊어버린것 아닌가.
"당시 국교정상화의 관건은 청구권문제였다.
그 당시 국민감정을 생각하면 1백억달러를 받아와도 무자비하게 비난
받았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달게 받았다.
당시 일본 외화보유고는 14억달러였다.
그 절반을 가져온 것이다"
-독도는 우리의 귀중한 영토이다.
이 귀중한 땅을 두고 폭파라는 망언을 했다.
창피하지 않은가.
"쓸모없는 땅이라고는 얘기하지 않았다.
양쪽에서 영유권을 주장했다면 국교정상화는 이뤄질수 없었다"
-한일국교정상화의 단초인 청구권문제 타결시 사과를 받았어야 일본의
망언을 막을수 있었다고 본다.
이런부분의 책임과 관련해 사과할 용의는 없는가.
"그 기간에 있었던 일에 대해 무한책임을 지고있다고 생각한다.
당시 한일회담은 외무장관의 책임하에 진행되었지만 미흡한 대처로 국민들
에게 계속 걱정을 끼친 것에 대해서는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자민련은 보수신념으로 뭉친 당이 아니라 정치적 패장들의 모임이라는
지적이 있다.
"이삭줍기"라는 얘기도 있는데.
"락수라는 말에는 동의할수 없다.
공산주의자가 아니라면 우리당은 누구에게 나 문이 열려 있다"
-이번 총선에서 어느 정도 의석을 획득할 것으로 보는가.
"될수 있는한 많은 후보자를 내려고 한다.
여러 상황으로봐서 캐스팅 보트를 행사할수 있는 의석은 틀림없이 확보할수
있다.
구체적인 의석수를 밝히는 것은 유권자에게 실례되는 일이다"
-기조연설에서 금융실명제등 개혁정책에 대해 동기가 불순하다고 지적
했는데.
"금융실명제 해놓고 야당측 자금줄은 끊고 여당은 여전히 풍성하다.
실제로 그렇다.
그런 것 예측하고 조치를 취한 것 아니냐"
-내각제를 무력으로 무너뜨린 장본인이 이제와서 내각제를 주장할수
있는가.
권력분점을 위한 정략때문이 아닌가.
"어불성설이다.
지금은 내각제를 할수있는 여건이 성숙돼 있다.
국민들의 총의에 의해 운영해 나갈수 있는 나라가 됐다.
내각제였다면 전직대통령비자금 문제와 같은 비리도 없었을 것이다.
대통령제만이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할수 있다는 주장도 받아들일수 없다"
< 김태완.이동주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3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