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칼럼] 의사와 점쟁이의 반말 .. 송숙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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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사람들은 의사를 존경한다.
그것도 상당히.
환자건 아니건 의사를 존경하는 마음은 한결같다.
그가 존경받는 행동을 하면 "의사선생님이니까"라며 의사라는 직업 자체를
선망하고 존경하는 것이고 나쁘게 굴었을 때도 "의사라는 사람이 저럴수
있을까"라고 보통사람과 다른 잣대로 평한다.
그만큼 의술을 가진 사람에 대해서는 누구나 특별하게 인식한다.
그런데 그 특별한 대접을 받는 사람들 중에 상식적으로 용서할수 없는
사람을 종종 만나게 된다.
어느해 가을인가, 시어머님께서 손마디가 몹시 아프시다고 해서 종합병원에
모시고 간 일이 있다.
그날 그 병원에서 만난 의사를 지금도 잊을 수 없다.
팔순이 넘은 시어머님에게 "할머닌 늙어서 그래, 관절염이라니까 그러네"
하며 반말을 했다.
시어머님께서는 얼굴을 붉히면서 "그러니까 의사선생께서 덜 아프게 처방해
주시라구요"라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50세를 갓 넘겼을까 싶은 그 의사는 "늙은이 병엔 약이 없어.
돌아가시면 나을 테니까"하고 휭 돌아섰다.
시어머님께서는 얼굴을 찌푸리면서 중얼거리셨다.
"무슨 의사가 저래.
늙은이한테 해라를 해 붙이는 저런 놈들때문에 다른 의사들도 욕을 먹지".
당시만 해도 시어머님의 그 노여움의 강도를 절실하게 못느꼈는데 지난
주일 종합병원에 가서 신장체크를 받다가 그만 비슷한 일을 당하곤 새삼
시어머님의 성난 얼굴이 생각났다.
필자보다 10여년이상 아래일듯한 의사선생께서 딱 부러지게 해라를 한다.
차트를 보고 있으니 내 나이는 알고 있을텐데 "응, 그래, 그렇게 하라구.
하라는 대로 하라구. 약먹으면 나을거야"" 하는게 아닌가.
나는 어이가 없어서 그를 가만히 쳐다보다가 견딜 수 없어 한마디 했다.
"내 나이가 얼만줄 알텐데 그렇게 반말을 하십니까"
그는 귀찮다는듯 내말은 들은체도 않고 간호원을 통해 다음환자를 부른다.
나는 그에게 무시당할 이유가 없는 단순한 환자다.
그의 손아랫 사람은 더구나 아니다.
나는 혀가 잘려나갔느냐고 따지고 싶은 것을 눌러 참으며 진찰실을 나왔다.
그리고 연전에 시어머님께서 죽어도 그 의사에게는 다시 안가겠다고 야단
하시던 것이 실감났다.
왜 그들은 반말을 하는 것일까.
환자들은 모두 모자라거나 무지렁이로 보이는 걸까.
물론 의사가 다 그렇다는건 아니다.
그러나 의사에게서 반말을 듣고 노여워 하는 노인들을 참으로 많이 보아
왔다.
의사들중 상당수가 윗사람에게 반말 짓거리를 한다는 증거가 아닐수 없다.
의사들이 보기에 환자들은 지겨운 아이로 보이는 걸까.
아니면 자기보다 몇십년 위인 사람에게 거침없이 반말을 해도 누구하나
뭐라고 하지 않으니 습관이 돼버린 걸까.
약사들중에도 가끔 손님에게 "해라"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픈 것을 하소연하는 많은 사람들을 대하다 보면 짜증도 날만 하지만
위아래 쯤은 구별해서 될수록 겸손하게 행동한다고 해서 못난 의사라고
얕보지는 않을 것이다.
인기있는 역술인들도 복채를 놓고 행여 좋은 말을 기대하는 손님에게
마구 해라를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문제는 그의 양식이겠지만 50세가 될까 말까한 의사가 80이 넘은 노인에게
반말을 한 것이나 50도 안된 의사가 열살이나 위인 남의 집 부인에게 말을
놓는대서야 어디 말이 되는가.
자기직업에 대한 교만이나 오만으로 남을 우습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그같은 행동을 설명할 수 있는가.
서양처럼 존댓말이 따로 없는 나라라면 모르거니와 존대어와 해라의 구별이
사전에까지 명기돼 있는 나라에 사는 이상 그런 상하 구분없는 마구잡이
말버릇은 사라졌으면 좋겠다.
병원에 가서 젊은 의사들에게 해라나 반말을 안들은 시민이 있다면 그는
참으로 행운아다.
앓는 것도 서러운데 의사들에게 반말까지 듣는 비극을 언제까지 감수해야
되는가.
아무에게나 해라나 반말을 쓰는 의사나 약사 점쟁이들은 한번쯤 반성해볼
시간을 가져보라고 충고하고 싶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3월 10일자).
그것도 상당히.
환자건 아니건 의사를 존경하는 마음은 한결같다.
그가 존경받는 행동을 하면 "의사선생님이니까"라며 의사라는 직업 자체를
선망하고 존경하는 것이고 나쁘게 굴었을 때도 "의사라는 사람이 저럴수
있을까"라고 보통사람과 다른 잣대로 평한다.
그만큼 의술을 가진 사람에 대해서는 누구나 특별하게 인식한다.
그런데 그 특별한 대접을 받는 사람들 중에 상식적으로 용서할수 없는
사람을 종종 만나게 된다.
어느해 가을인가, 시어머님께서 손마디가 몹시 아프시다고 해서 종합병원에
모시고 간 일이 있다.
그날 그 병원에서 만난 의사를 지금도 잊을 수 없다.
팔순이 넘은 시어머님에게 "할머닌 늙어서 그래, 관절염이라니까 그러네"
하며 반말을 했다.
시어머님께서는 얼굴을 붉히면서 "그러니까 의사선생께서 덜 아프게 처방해
주시라구요"라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50세를 갓 넘겼을까 싶은 그 의사는 "늙은이 병엔 약이 없어.
돌아가시면 나을 테니까"하고 휭 돌아섰다.
시어머님께서는 얼굴을 찌푸리면서 중얼거리셨다.
"무슨 의사가 저래.
늙은이한테 해라를 해 붙이는 저런 놈들때문에 다른 의사들도 욕을 먹지".
당시만 해도 시어머님의 그 노여움의 강도를 절실하게 못느꼈는데 지난
주일 종합병원에 가서 신장체크를 받다가 그만 비슷한 일을 당하곤 새삼
시어머님의 성난 얼굴이 생각났다.
필자보다 10여년이상 아래일듯한 의사선생께서 딱 부러지게 해라를 한다.
차트를 보고 있으니 내 나이는 알고 있을텐데 "응, 그래, 그렇게 하라구.
하라는 대로 하라구. 약먹으면 나을거야"" 하는게 아닌가.
나는 어이가 없어서 그를 가만히 쳐다보다가 견딜 수 없어 한마디 했다.
"내 나이가 얼만줄 알텐데 그렇게 반말을 하십니까"
그는 귀찮다는듯 내말은 들은체도 않고 간호원을 통해 다음환자를 부른다.
나는 그에게 무시당할 이유가 없는 단순한 환자다.
그의 손아랫 사람은 더구나 아니다.
나는 혀가 잘려나갔느냐고 따지고 싶은 것을 눌러 참으며 진찰실을 나왔다.
그리고 연전에 시어머님께서 죽어도 그 의사에게는 다시 안가겠다고 야단
하시던 것이 실감났다.
왜 그들은 반말을 하는 것일까.
환자들은 모두 모자라거나 무지렁이로 보이는 걸까.
물론 의사가 다 그렇다는건 아니다.
그러나 의사에게서 반말을 듣고 노여워 하는 노인들을 참으로 많이 보아
왔다.
의사들중 상당수가 윗사람에게 반말 짓거리를 한다는 증거가 아닐수 없다.
의사들이 보기에 환자들은 지겨운 아이로 보이는 걸까.
아니면 자기보다 몇십년 위인 사람에게 거침없이 반말을 해도 누구하나
뭐라고 하지 않으니 습관이 돼버린 걸까.
약사들중에도 가끔 손님에게 "해라"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픈 것을 하소연하는 많은 사람들을 대하다 보면 짜증도 날만 하지만
위아래 쯤은 구별해서 될수록 겸손하게 행동한다고 해서 못난 의사라고
얕보지는 않을 것이다.
인기있는 역술인들도 복채를 놓고 행여 좋은 말을 기대하는 손님에게
마구 해라를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문제는 그의 양식이겠지만 50세가 될까 말까한 의사가 80이 넘은 노인에게
반말을 한 것이나 50도 안된 의사가 열살이나 위인 남의 집 부인에게 말을
놓는대서야 어디 말이 되는가.
자기직업에 대한 교만이나 오만으로 남을 우습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그같은 행동을 설명할 수 있는가.
서양처럼 존댓말이 따로 없는 나라라면 모르거니와 존대어와 해라의 구별이
사전에까지 명기돼 있는 나라에 사는 이상 그런 상하 구분없는 마구잡이
말버릇은 사라졌으면 좋겠다.
병원에 가서 젊은 의사들에게 해라나 반말을 안들은 시민이 있다면 그는
참으로 행운아다.
앓는 것도 서러운데 의사들에게 반말까지 듣는 비극을 언제까지 감수해야
되는가.
아무에게나 해라나 반말을 쓰는 의사나 약사 점쟁이들은 한번쯤 반성해볼
시간을 가져보라고 충고하고 싶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3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