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옥이 왕부인에게로 달려가 보옥에게 일어난 변고를 알리자 왕부인을
비롯하여 왕부인의 방에 있던 사람들이 보옥에게로 달려왔다.

잠시 후 대부인도 그 소식을 듣고 허겁지겁 달려왔다.

보옥은 이제 칼이든 몽둥이든 손에 잡히는 대로 집어들고 휘둘러대고
있었다.

두 눈에서는 이상한 광채가 번득이고 있었다.

"아이구, 이게 무슨 날벼락이야. 얘, 보옥아, 보옥아"

왕부인이 보옥을 안타깝게 부르며 제지하려고 애쓰다가 그만 기진하여
주저앉고 말았다.

"내 아들이, 내 아들이, 하나밖에 없는 내 아들이"

왕부인은 손으로 방바닥을 치며 통곡하였다.

"아이구, 내 손자 보옥아, 보옥아"

대부인도 그 광경에 손발을 덜덜 떨다가 혼절하다시피 쓰러져 왕부인을
부여안고 함께 통곡하였다.

보옥은 어머니도 할머니도 알아보지 못하고 창가에 놓여 있는 화분을
집어들고 통곡을 하고 있는 그들을 향해 던졌다.

다행히 화분은 그들을 맞히지 못하고 방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보옥 오빠, 나 모르겠어요? 나, 대옥이에요"

대옥이 보옥의 허리를 껴안으며 부르짖었으나 보옥은 평소에 그렇게
좋아하던 대옥마저 알아보지 못하고 대옥을 밀쳐버렸다.

"남자들을 불러와야겠어"

희봉이 시녀들을 데리고 급히 보옥의 방을 나갔다.

좀 있으니 가사와 가정, 가련, 가환, 가용, 가운, 가평, 설반 등
집안의 남자들이 달려오고 형부인과 설부인도 뒤따라왔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남자들을 부르러 갔던 희봉이 손에 식칼을 들고 보옥의 방으로 뛰어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그 식칼로 이미 무엇을 찔렀는지 시뻘건 피가 식칼에 잔뜩 묻어 있었다.

사람을 찌르고 왔는지도 몰랐다.

"아이구, 희봉이마저. 이게 무슨 변고야"

이환이 부르짖으며 남자들 뒤로 몸을 피했다.

"여보, 당신이 왜 이러는 거야? 나야, 나"

가련이 희봉을 막아섰으나 희봉은 자기 남편도 알아보지 못하고 식칼로
찌르려고 하였다.

가련이 간신히 식칼을 피해 밖으로 달아났다.

희봉이 뭐라 뭐라 욕설을 내뱉으며 식칼을 든 채 가련을 뒤쫓았다.

가련이 취연교 밑에 몸을 숨기자 희봉은 닭이든 개든 눈에 보이는
대로 식칼로 마구 찔렀다.

"남자들이 뭐 해요? 희봉 아씨를 잡아요"

뒤늦게 달려온 주서의 아내가 부르짖었으나 남자들은 방안의 보옥을
처치하느라고 경황이 없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3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