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안보"문제가 전세계 정치권의 주요 의제로 부각되고 있다.

세계각국지도자들은 기아를 퇴치하고 식량증산을 논의하기 위해
"식량안보"정상회담을 오는 11월13부터 17일까지 로마에서 갖는다.

이 회의를 주관하는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주요국가의 수반들을 비롯
팔레스타인의 야세르 아라파트,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에 이르기까지
전세계 120명의 정상들이 참석할 것이라고 최근 발표했다.

이번 회담개최는 곡물가가 15년만에 최고수준이며 재고량이 20년만에
최저수준으로 떨어진 상황에서 이루어지는것이다.

FAO추계에 따르면 지난해 각국의 기상이변 여파로 전세계곡물생산이
전년보다 5,800만t 줄어든 18억9,000만t이며 이에 따라 수요대비
재고율은 현재 14~15%에 그치고 있다.

FAO가 정한 식량안보에 필요한 재고율 최저선인 17~18%를 크게 밑도는
것.

식량부족으로 기아에 허덕이는 인구도 나날이 늘어 개도국에서만 어린이
2억명을 포함한 8억명이 고질적인 영양부족상태에 있다.

페드로 메드라노 FAO 세계식량안보위원장은 "기아와 가난때문에
세계각지에서 1억여명이 식량과 일자리를 찾아 국경을 넘고 있다"며
"이는 인류 역사상 최대규모의 인구이동"이라고 지적했다.

더욱이 현재 58억 인구가 오는 2030년쯤 90억명으로 늘어날 것이며
이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세계식량생산이 75%이상 증가해야 한다고
FAO는 주장한다.

"전인류를 위한 식량"( Food for all )이란 슬로건으로 개최되는
식량정상회담은 바로 이같은 문제를 논의하려는 것이다.

자크 디우프 FAO 사무총장은 "이번 회담에서는 굶주림으로 생존권을
위협받고 있는 상당수 인구의 기아근절 문제와 식량증산을 위한 각국의
정책공약 및 행동계획등을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상들은 21세기에 기아를 종식시켜야할 필요성에 관한 정책성명과
이 목표달성을 위한 행동지침을 채택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위해 각국 실무자들은 이달부터 구체작업에 착수,현안논의및
성명초안작성을 오는 7월까지 마무리지을 계획이다.

FAO는 최근 "식량안보"개념을 <>넉넉한 식량재고를 바탕으로 필요할때
언제 어디서든 공급 가능하며 <>낮은 가격으로 모든 사람이 "충분히"
구입할 수 있는 상태라고 정의했다.

이같은 "식량안보"는 바로 개도국과 빈곤국들이 당면한 문제이다.

FAO보고서에 따르면 빈곤국에 대한 식량원조는 90년도 불변 달러가치로
환산할때 지난 81년부터 83년까지 160억달러규모에서 10년후인 91년부터
93년까지 110억달러로 축소됐다.

또 88개 저소득식량부족국(LIFDC)들중 33개국은 지난 88년부터 90년까지
수출총액의 4분의1 이상을 식량구입비로 지출했다.

지난해 쌀값이 45% 인상된 것처럼 식량가격의 폭등세가 지속될 경우
LIFDC들은 더 이상 시장에서 충분한 분량의 식량을 구매할 수 없다고
FAO는 경고한다.

때문에 FAO는 이들 국가의 식량난 해소를 위해 농업잠재력이 있는
지역에는 곡물증산을 적극 권장하고 잠재력이 없는 지역에는 비농업
부문이라도 발전시켜 식량구입자금을 벌도록 하는 방안을 정상회담에
상정할 방침이다.

사실 곡물의 수급면에서만 볼때 전인류가 구매할 만큼 충분한 식량이
있다.

전세계 곡물생산중 순수 인류소비분은 연간 약 9억t이며 비슷한
분량을 사료나 종자 혹은 쓰레기로 폐기하고 있는 실정.

그러나 카길 등 미국의 5대메이저들이 세계 곡물유통의 75%를 장악,
가격조작을 통해 막대한 부당이득을 취득하고 있어 빈국들의 식량접근이
어려운 현실이다.

식량문제해결을 위한 비정부기구인 크리스천에이드의 유럽 및 세계담당
총책 클라이브 로빈슨씨는 이같은 유통구조 왜곡문제가 "생산부족에
이어 식량의 2차 규제장벽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업저버자격으로 식량정상회의에 참가하는 각국 비정부기구들은 이 문제를
정상회의에서 논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요컨대 이번 식량정상회담개최 의의는 우루과이라운드에서 배제됐던
개도국과 빈곤국들의 최대 관심사인 식량안보문제를 세계정치권의
주요의제로 다시 부각시킨 점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 유재혁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3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