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법 형사합의 30부 김영일 부장판사가 "95고합 1280호, 96고합 38호,
96고합 76호, 96고합 127호 등 4건의 사건을 병합해 심리하겠다"면서
"피고인 전두환"을 호칭하면서 12.12, 5.18사건에 대한 역사적 공판이
시작됐다.

노태우, 황영시 등 16명의 피고인이 모두 법정에 들어서자 김부장판사는
"심리에 들어가기 전에 국민여러분을 위해 잠시 공판외 절차를 갖기로
하겠다"면서 "TV카메라기자 한조, 사진기자 1명에게 잠시 피고인들의
뒷모습을 촬영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사진촬영이 끝난뒤 재판부는 "본적이 어딥니까", "사는곳은 어딥니까",
"직업은 무엇입니까", "생년월일은 언제입니까" 등을 묻는 인정심문을
10분간 진행했다.

이어 검찰의 모두진술이 시작됐다.

<>김상희 부장검사 =존경하는 재판장님, 이자리에 계신 여러분.

국내외의 비상한 관심속에 12.12, 5.18사건의 공판이 시작됐습니다.

모두 아시느나와 같이 이사건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흐름을 크게 바꿔
놓았습니다.

이번 재판을 통해 숨겨진 진실이 낱낱이 밝혀지고, 참다운 정의가
구현되는 계가가 돼, 우리 후손들이 다시는 이같은 비극을 겪지 않기를
바라면서 공소장 요지를 낭독하겠습니다.

검찰의 공소사실 요지 낭독이 끝난뒤 변호인단의 전상석변호사가 "석명
요청과 사안에 관한 변호인단의 의견"을 낭독했다.

전상석 변호사는 이날 오전 9시25분께 재판부의 허가를 받아 변호인
의견진술을 진행했다.

전변호사는 "석명요청과 사안에 관한 변호인단의 의견"이란 제목의 1백
10쪽짜리 의견서를 통해 12.12및 5.18산건의 법적 정당성과 정치적 당위성을
강변했다.

<>. 전변호사 =변호인은 그 고유의 권한과 포괄적 대리권을 행사하여
피고인의 이익을 추구함을 그 소임으로 하며 특히 이 사건에 있어 민족사적
의의를 감안하여 민족의 갈등을 풀어야 할 소명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이미 대한민국 헌법은 그 소정 적법 절차에 따라 전후 아홉차례에 걸쳐
개정이 이뤄졌습니다.

개정때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대한 민국은 위대한 독립정신을
바탕으로 민주국가를 건설하여 나라의 연속성과 정통성을 이어 왔습니다.

이 대한민국 헌법이 부정된다면 대한민국의 연속성과 정통성마저도
부정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것은 법리상 너무나 당연합니다.

또한 내정면에서 각종 시책이 단절없이 이어져 왔습니다.

따라서 제5공화국도 헌법에 터잡아 정통성을 이어 왔습니다.

이 사건의 법적 근거가 되고 있는 5.18특별법은 전형적인 처분적 법률
입니다.

적용대상자가 특정돼 있어 평등의 원칙에 반합니다.

헌법이 정한 형법불소급의 원칙에 위배된 점이 명백합니다.

(중략)

김영일 부장판사는 전변호사의 의견진술이 계속되는 도중 "간단히 요약해서
하십시요"라며 주의를 주기도 했으나 전변호사는 "중요한 사항이 많이
포함돼 있어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발표케 해 주십시오"라고 말한뒤
의견진술을 이어나갔다.

전변호사는 이어 <>12.12사건당시 정승화 전육참총장의 강제연행 경위
<>박정희 전대통령 시해사건의 수사과정 <>5.17비상계엄 확대조치의
불가피성 등 이번 사건의 사실관계를 중심으로 신군부측의 입장을 대변하는
요지의 의견을 피력했다.

재판부는 이날 오후 2시30분께 입정, 오전 공판에서 중단됐던 변호인
의견진술을 계속 진행시켰다.

전두환피고인의 변호인인 전상석변호사는 오전에 이어 <>검찰의 공소재기의
부당성 <>5공화국의 정통성 등을 계속 강조해 나갔다.


<>. 전변호사 = 검찰은 재소금지의 원칙을 위배하고 있습니다.

검찰이 이미 기소유예 또는 공소권없음 등 불기소처분을 내린 똑같은
사안에 대해 특별한 사정변경없이 기소를 재기한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물론 검찰의 기소가 검찰내부의 재량권에 따라 이뤄진 것이라 하더라도
공소재기의 적법여부는 법정에서 반드시 가려져야 합니다.

(중략)

전변호사의 의견진술이 마무리된뒤 노태우 피고인의 변호인인 한영석
변호사의 의견진술이 오후2시37분께 이어졌다.

<>. 한변호사 =79년 박정희대통령 시해사건은 천인공노할 사건입니다.

시해사건으로 말미암아 정치, 경제, 사회 등 전반적 혼란은 극에 달했고
안보도 위기 상황에 있었습니다.

10.26사건의 수사는 그만큼 국민적 관심속에 매우 공명정대하게 진행
돼야만 했습니다.

더구나 사건현장에 있었던 정승화육참총장에 대한 조사는 불가피한
것이었고 12.12사건은 연행과정에서 우발적으로 일어난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5.17비상계엄 확대조체이후 최규하전대통령의 하야에 이르는 이른바
5.18사건의 일련의 전개과정은 당시 대통령의 재가를 얻어 계엄법에 근거해
취해진 합법적인 통치행위로서 내란과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유신헌법에 기초, 11대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과정을
놓고 검찰이 이를 내란행위의 일환으로 판단한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습니다.

국민의 뜻에 따라 개정한 헌법에 근거해 창출된 5공화국이 내란정권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중략)

16분동안 진행된 한변호사의 의견진술이 끝난뒤 정호용 피고인의 변호인인
이진우 변호사는 오후2시53분께 3번째 변호인 의견진술을 시작했다.

<>. 이변호사 =검찰이 내란행위로 기소한 공소사리은 전부 당시 대통령의
재가에 따라 이뤄진 합법적 조치들 입니다.

대통령 권한행사에 대한 신군부측의 강압여부가 현재 쟁점이 되고 있지만
이를 구증할 구체적인 근거가 없고 따라서 계엄법에 근거한 통치행위를
내란으로 규정하기는 불가능합니다.

변호인들의 모두 진술이 끝난뒤 김상희 부장검사는 재판부에 진술기회를
요청, 변호인단의 모두 진술에 대한 반론을 펼쳤다.

<> 김부장 = 이 재판은 후손들에게 귀감이 되어야 할 재판입니다.

저희 검찰은 이 재판의 품위를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작정입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변호인들이 검찰의 공소사실이 마치 잘못된 것처럼
호도하고 있기 때문에 검찰의 의견을 간략하게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우선 총론적으로 말씀드리면 변호인의 모두진술 의도가 재판을 정치
선전장화 하려는 목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

또 변호인들은 모두진술을 마치 최종변론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변호인 모두진술은 또한 당초 밝힌 석명권행사 요청의 범위를 벗어나
있습니다.

각론적으로 들어가서 전두환 피고인의 변호인인 전상석 변호사는 5공의
정통성문제를 언급했습니다.

그러나 이 재판은 어디까지나 일부 정치군인들의 권력찬탈사건을 다루는
재판입니다.

성공한 혁명에 대한 가벌성 여부는 이미 현재에서 결정이 난 사항이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두번째로 12.12, 5.18사건의 배경에 관해 역시 전변호사가 언급했습니다.

이는 아직 재판의 사실심리가 진행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재판부에
불필요한 예단을 줄 우려가 있는 사안입니다.

세번째로 공소시효와 관련해서 이는 이미 현재에서 합헌결정이 난 사안으로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에서 특별법을 제정해 시효의 연장을 법으로 제정한
사안입니다.

앞으로 검찰은 개별적인 석명권 행사를 위해 검찰 신문과정에서 피고인들
에게 충분한 진술의 기회를 주도록 할 것입니다.

아무쪼록 이 재판이 암울한 시대를 거쳐온 국민들의 역사를 바로세우는
장이 되도록 해야하며 변호인들이 검찰의 공소사실이 마치 크게 잘못된
것처럼 판단하는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김부장의 반론이 끝나자 전변호사가 재판부에 "기회를 주신다면."하고
발언권을 신청했으나 재판장인 김부장 판사는 "더 이상 기회는 없습니다"
라며 말을 잘랐다.


<>. 김부장판사 =변호인들의 모두 진술을 요약해보면 검찰의 공소사실
가운데 공소의 일시와 주체가 미흡한 부분이 있습니다.

또 배경과 행위 내용이 이해하기 난삽한 부분도 있습니다.

사건이 사건인만큼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검찰은 피고인들을 재판에
회부한 만큼 정확하게 공소사실을 정리해 주시기 바랍니다.

또 아무개 등 몇명 하는 식의 기소내용도 명확히 몇 명인지 정리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외 번호인들의 석명권 요구 부분에 대해 검찰은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검찰의 직접 신문에 들어가기 전에 몇가지 알려드리겠습니다.

애당초 3차례 공판을 열어 오늘은 12.12, 다음은 5.17, 그다음날은 5.18,
이렇게 나눠 집중심리를 할 예정이었으나 오전과 오후에 걸쳐 모두 진술에서
시간이 상당히 지났습니다.

그렇다고 허비했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매우 바빠졌습니다.

이 재판이 계속되는동안 법률적 견해를 묻거나 피고인들이 이를 밝힐경우
시간만 소요될뿐 사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모든
소송관계인들은 유의해야 할 것입니다.

심리에 들어가기 앞서 12.12사건과 관련이 없는 이희성 주영복 정호용
피고인 등 3명은 퇴정해 주십시요.

(한국경제신문 1996년 3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