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 경영시대] (10) 공개매수 (2) .. 동해종금 인수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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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난데없이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도 유분수지.
주인인 나한테까지 아무런 한마디없이 회사를 먹겠다고"
한솔제지가 동해종금을 공개매수한다고 발표한 지난 94년11월.
동해종금의 최대주주인 동일고무벨트의 김근회장은 노발대발하며 펄펄
뛰었다.
한솔측이 김회장에게 이렇다할만한 양해도 구하지 않고 부산지역 연고인
동해종금을 매수하겠다고 선전포고를 했기때문이다.
그런데도 동해종금매수건이 성공한 이유는 뭘까.
"동해종금을 매수대상으로 선정한후 각종 시나리오를 가상해보고 대응책을
준비했다.
직원과 경영진들이 한솔측의 의도를 이해해준 것도 공개매수 성공요인
이었다" (한솔그룹 이도영 정보통신사업단부장)
한솔그룹의 기업매수 실무를 맡았던 이부장(당시 한솔제지 기획부과장)은
사전작업이 치밀했음을 암시했다.
계획이 치밀했던 만큼 결과도 좋았다.
동일고무벨트측이 한솔제지를 "괘씸죄"로 몰아붙였지만 결국 공개매수는
성공했다.
한솔그룹은 삼성그룹으로 분리된후 경쟁력있는 기업군으로 성장하기 위해
보스턴컨설팅에 자문을 했었다.
자문결과 제지업관련 수직계열화뿐만 아니라 정보통신 금융 환경엔지니어링
등 세가지 축을 구성해야 한다는 진단이 나왔다.
그래서 금융회사의 인수에 적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한솔그룹이 동해종금을 매수대상으로 선정한 것은 지난 94년9월.
금융분야 진출을 위해 동서창업투자 신한투자자문 대아상호신용금고를
인수했지만 국제금융쪽이 약했다.
때마침 재무부가 투금사의 종금전환을 고시했다.
이때부터 숨가쁘게 그리고 은밀하게 매수작전은 시작됐다.
한솔측은 2명의 실무진을 구성해 철저한 보안속에 사전작업과 공개매수의
준비작업을 진행했다.
매수대상으로 떠오른 투금사는 동해투금과 H투금 C투금 G투금등 4곳.
종금전환가능성과 기업내용을 살핀 결과 동해투금이 선정됐다.
동해종금의 2, 3대주주의 지분을 장내외에서 확보하는등 지분확보작업이
시작됐고 공개매수 가격결정문제도 중요하게 거론됐다.
한솔측은 어느정도 지분을 확보한 상태에서 대우증권을 통해 증권감독원에
공개매수신청서를 제출했다.
공개매수 발표이후 주가를 매수가격이하로 관리하는 작업과 매수대상기업의
경영진과 직원에 대한 설득작업도 병행됐다.
가장 큰 걸림돌은 부산지역의 정서였다.
"한솔이 부산지역금융기관을 매수해 돈을 끌어다 쓸 것이다"라는 루머에
대해 해명하는 작업이 가장 힘들었다는게 이부장의 얘기다.
이부장은 "한솔이 돈을 끌어쓰려면 은행대출이나 회사채발행등을 놔두고
2금융권의 비싼 금리를 쓰겠느냐"고 반문하며 "그룹계열 금융회사가 되는
것이 발전가능성이 크다"고 직원들을 설득했다.
설득결과 동해종금 직원협의회로부터 반대하지 않는다는 의견을 받아냈고
경영권인수후에 임기를 보장하는 조건으로 임원들의 양해도 구해냈다.
대주주인 김회장과의 접촉은 없었지만 매수후에 경영을 잘하겠다는 한솔측
의 의지도 김회장에게 전달됐다.
한국M&A의 권성문사장은 "동해종금건은 우리나라 기업매수(M&A) 역사에
큰획을 그은 사건이다"고 평가했다.
공개매수라는 증권거래법 테두리에서 합법적으로 "치밀한 사전준비"작업을
거쳐 이뤄진 "공격적 M&A"라는 점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실무를 담당했던 이부장도 "처음에는 적대적인 관계였지만 나중에는
우호적으로 매듭지어졌다.
경영권인수이후 직원들의 복리후생도 좋아졌고 감사 1인만이 바뀌였을뿐
기존경영진이 지금 그대로 남아있다"고 이부장은 설명했다.
동해종금의 공개매수가 적대적 M&A가 아닌 "공격적 M&A"로 평가되는 것도
그런이유다.
< 최명수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3월 12일자).
주인인 나한테까지 아무런 한마디없이 회사를 먹겠다고"
한솔제지가 동해종금을 공개매수한다고 발표한 지난 94년11월.
동해종금의 최대주주인 동일고무벨트의 김근회장은 노발대발하며 펄펄
뛰었다.
한솔측이 김회장에게 이렇다할만한 양해도 구하지 않고 부산지역 연고인
동해종금을 매수하겠다고 선전포고를 했기때문이다.
그런데도 동해종금매수건이 성공한 이유는 뭘까.
"동해종금을 매수대상으로 선정한후 각종 시나리오를 가상해보고 대응책을
준비했다.
직원과 경영진들이 한솔측의 의도를 이해해준 것도 공개매수 성공요인
이었다" (한솔그룹 이도영 정보통신사업단부장)
한솔그룹의 기업매수 실무를 맡았던 이부장(당시 한솔제지 기획부과장)은
사전작업이 치밀했음을 암시했다.
계획이 치밀했던 만큼 결과도 좋았다.
동일고무벨트측이 한솔제지를 "괘씸죄"로 몰아붙였지만 결국 공개매수는
성공했다.
한솔그룹은 삼성그룹으로 분리된후 경쟁력있는 기업군으로 성장하기 위해
보스턴컨설팅에 자문을 했었다.
자문결과 제지업관련 수직계열화뿐만 아니라 정보통신 금융 환경엔지니어링
등 세가지 축을 구성해야 한다는 진단이 나왔다.
그래서 금융회사의 인수에 적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한솔그룹이 동해종금을 매수대상으로 선정한 것은 지난 94년9월.
금융분야 진출을 위해 동서창업투자 신한투자자문 대아상호신용금고를
인수했지만 국제금융쪽이 약했다.
때마침 재무부가 투금사의 종금전환을 고시했다.
이때부터 숨가쁘게 그리고 은밀하게 매수작전은 시작됐다.
한솔측은 2명의 실무진을 구성해 철저한 보안속에 사전작업과 공개매수의
준비작업을 진행했다.
매수대상으로 떠오른 투금사는 동해투금과 H투금 C투금 G투금등 4곳.
종금전환가능성과 기업내용을 살핀 결과 동해투금이 선정됐다.
동해종금의 2, 3대주주의 지분을 장내외에서 확보하는등 지분확보작업이
시작됐고 공개매수 가격결정문제도 중요하게 거론됐다.
한솔측은 어느정도 지분을 확보한 상태에서 대우증권을 통해 증권감독원에
공개매수신청서를 제출했다.
공개매수 발표이후 주가를 매수가격이하로 관리하는 작업과 매수대상기업의
경영진과 직원에 대한 설득작업도 병행됐다.
가장 큰 걸림돌은 부산지역의 정서였다.
"한솔이 부산지역금융기관을 매수해 돈을 끌어다 쓸 것이다"라는 루머에
대해 해명하는 작업이 가장 힘들었다는게 이부장의 얘기다.
이부장은 "한솔이 돈을 끌어쓰려면 은행대출이나 회사채발행등을 놔두고
2금융권의 비싼 금리를 쓰겠느냐"고 반문하며 "그룹계열 금융회사가 되는
것이 발전가능성이 크다"고 직원들을 설득했다.
설득결과 동해종금 직원협의회로부터 반대하지 않는다는 의견을 받아냈고
경영권인수후에 임기를 보장하는 조건으로 임원들의 양해도 구해냈다.
대주주인 김회장과의 접촉은 없었지만 매수후에 경영을 잘하겠다는 한솔측
의 의지도 김회장에게 전달됐다.
한국M&A의 권성문사장은 "동해종금건은 우리나라 기업매수(M&A) 역사에
큰획을 그은 사건이다"고 평가했다.
공개매수라는 증권거래법 테두리에서 합법적으로 "치밀한 사전준비"작업을
거쳐 이뤄진 "공격적 M&A"라는 점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실무를 담당했던 이부장도 "처음에는 적대적인 관계였지만 나중에는
우호적으로 매듭지어졌다.
경영권인수이후 직원들의 복리후생도 좋아졌고 감사 1인만이 바뀌였을뿐
기존경영진이 지금 그대로 남아있다"고 이부장은 설명했다.
동해종금의 공개매수가 적대적 M&A가 아닌 "공격적 M&A"로 평가되는 것도
그런이유다.
< 최명수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3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