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인번호 "3124"의 전두환 전대통령과 수인번호 "1432"의 노태우
전대통령.

두전직 대통령이 형사사건 피고인의 신분으로 수의를 입은채 나란히
법정에 섰다.

11일 오전 10시 서울지법 417호 대법정.

이 사건 재판장인 김영일 서울지법 형사합의 30부장의 "피고인 전두환"
호명에 따라 전씨가 먼저 법정에 들어섰다.

전씨는 단식 후유증이 가신 듯 건강한 모습으로 입정, 재판장을 향해
가벼운 목례를 한 후 자리에 섰다.

이어 호명된 노씨는 다소 상기된 표정에 느린 걸음으로 재판부에 대한
목례없이 곧바로 전씨의 옆자리에 섰다.

국내외의 이목이 집중되는 순간이었다.

노씨의 입정에도 정면만 응시하고 있던 전씨는 노씨가 왼손으로 자신의
오른손을 살짝 쥐자 그때서야 고개를 돌려 가벼운 목례로 응답했다.

두 사람은 서로의 건강을 묻는 듯 어색한 표정으로 짤막한 귀엣말을
나눈 후 다시 고개를 돌렸다.

이어 재판부의 인정신문이 시작됐다.

전씨는 느리지만 또밖또박한 말투로 본적과 거주지, 생년월일을 정확히
대답했다.

노씨는 다소 더듬거리는 어투였으며본적지를 잘못 대 재판장이 확인을
구하기도 했다.

검찰과 변호인단의 장황한 모두 진술이 진행되는 동안 두 사람의
몸가짐은 사뭇 대조를 이루었다.

전씨는 상반신을 뒤로 젖히고 발을 까닥거리는등 여유를 보이기도
했다.

반면에 노씨는 다소 곳이 앉아 있다가 간혹 고개를 떨구기도 했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에게서 가끔 천장을 바라보면서 침통한 표정을
짓는 피고인의 전형적인 모습은 예외없이 발견되었다.

오전 11시55분경 재판장이 오전 재판의 휴정을 선언하자 두 사람은
전변호사의 반박 내용이 흡족했다는 듯이 피고인석에서 일어나 밝은
표정으로 악수를 나누었다.

이어 노씨는 옆자리에 있던 유학성, 황영시 피고인과 뒷자리의 박준병,
장세동 피고인 등과 연이어 악수를 나누었으며 전씨도 허화평, 허삼수 등
다른 피고인들에 둘러싸여 인사를 주고 받았다.

방청석에서도 재판부에서 바라봐 왼쪽 여섯째줄에 나란히 앉아있던
재국씨 등 전씨의 세 아들과 맞은 편 여덟재 줄에 앉아 방청하고 있던
노씨의 외아들 재헌씨 등이 다소 홀가분한 표정으로 일어나 서로 눈인사를
나누었다.

또 이원홍 전 문공부장관, 김영진 전 육참총장, 이필섭 전 합참의장,
최석립 전 경호실장 등 법정을 가득메웠던 5.6공 주요 인사들도 우르르
일어나 전.노씨 등 피고인을 향해손짓을 하기도 했다.

이때 일면 예상도 됐던 사건이 벌어졌다.

"야, 전두환 노태우 개xx들. 너희들이 아직도 스타인 줄 아느냐.
너희들은 민족의 반역자다.

반성도 없이 법정에서 무슨 악수냐. 개xx들 꺼져라"는 고함소리가
법정 한 구석에서 들렸다.

지난 91년 4월 시위도중 전경이 휘두른 쇠파이프에 머리를 맞아 숨진
명지대생 강경대군의 아버지 강민조씨(55)가 분노를 터뜨린 것이다.

강씨의 분노의 소리가 있자 마침 옆자리에 있던 전씨의 세 아들이
"야, 이 xx가 뭐라고......"라고 맞받아 소리쳤다.

또 이들중 1, 2명이 주먹으로 강씨의 얼굴과 목을 때려 강씨가
쓰러졌으며 법정경위가 뜯어말리는 소동이 벌어졌다.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5.6공 인사중 누군가는 강씨와 법정경위를
가리키며 "법정이야, 법대로 해"라며 위협조로 퍼붓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전.노피고인 등은 입술을 지긋이 깨물며 굳은 표정으로
서둘러 퇴정했다.

한편 얼굴과 목부위에 전치 3주의 부상을 입은 강씨는 "내 아들을
죽인 살인마가 웃으면서 악수하는 순간 분노가 치밀었다"며 자신을
때린 전씨 아들을 폭행혐의로 검찰에 고소하겠다고 밝혔다.

< 윤성민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3월 12일자).